[이현수 논단]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만 아름드리 고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

  • 입력 2023.10.24 11:00
  • 수정 2023.10.24 19:46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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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본지 논설위원
이현수 본지 논설위원

 예년에 비해 시월 하순임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가을이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단풍도 구경하기 전에 생뚱맞게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는 성급한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떠나가는 모든 것에는 눈물겨움이 있다. 그 무덥던 지난여름이 떠나간 것에도 아리고 사연 있는 아픔이 배여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직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묘한 아픔이 여기저기 공존하며 서로를 보듬고 산다. 조직 내에서 매일매일 부딪혀야 하는 가까운 지인들과의 크고 작은 인연에도 어쩔 수 없는 관계의 힘이 작용한다.

 떠나는 것에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도 없다. 말이 없다고 생각까지 없는 구성원 또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음도 알아야 한다.

 평범함 속에서 잘 견뎌내고 잘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쩌면 그것이 비범한 삶인지도 모른다. 살며 부대끼며 자신도 모르게 저질러온 과는 없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월이다.

 본인의 욕심으로 자신의 배만 채우려는 아둔함으로 구성원들을 책임지지 못하는 부족한 리더의 생각은 너무나 크고 굵은 아픔으로 조직원의 자존감을 저해하는 결정적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주말 친한 지인들과 근처 등산로를 걸으며, 숲에 머무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생김새가 다르고 개성 또한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름의 생존 방식에서 홀로 잘났다고 버티는 식물은 보지 못했고, 모든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를 구성할 때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숲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변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만 아름드리 고목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삶의 지혜, 인간의 삶이나 식물이 살아가는 이치에는 같은 성질이 있음을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리더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지금까지의 행위 자체가 관례상 정당했다고 생각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 조직은 분명 와해될 것이라는 결론부터 감히 내린다.

 가을밤, 흔들리며 불어오는 가을바람 사이사이로 듬성듬성 들려오는 빗소리까지 함께해 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환상에 취해보는 기분은 알싸하기까지 하다.

 뭇사람들의 안부가 궁금한 날, 스쳐 지나간 시절 인연들의 안부를 묻는 평범 속 비범한 일상을 즐기는 것도 가을의 허무를 이겨내는 한 방편인지도 모른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우두둑 떨어져 버린 노란 은행잎의 화려한 배반을 해마다 경험하는 우리다.

 변하는 것은 시간 시간별로 바뀌는 단풍 색깔만이 아니라 가을을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었고,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계절은 화려한 단풍의 색깔을 잡아둘 수 없다는 사실도 자연으로부터 배워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계절은 떠나보내는 많은 것들과의 이별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위태롭게 하는 것 같다.

 가을 오기 이전의 평범한 일상들이 이제는 전부가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일상이 돼버린 지금, 평범 속 비범한 일을 찾아 나서는 일이 그리 유별스럽지 않은 시절이 돼버렸다.

 우리는 언제 그 찬란한 평범 속에서 누렸던 과거의 편안한 일상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함께 잘 사는 공존이 아니라 혼자의 안위가 일상이 돼버린 과오가 평범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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