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 박사의 밥상머리교육학] 아버지의 밥상

  • 입력 2023.11.06 10:45
  • 수정 2023.11.06 13:14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인태 창원 남정초등학교 교장·시인
오인태 창원 남정초등학교 교장·시인

 음식 관련 글을 자주 썼던 저술가 피셔의 말에 따르면 맛에 대한 기억은 장기기억이다.

 그것은 대개 일화와 함께한다. 내게 가장 오래된 맛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가 따다 준 자연산 송이, 그 한 송이 맛이다.

 그땐 가을걷이가 끝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땔감 나무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이른 가을이던가. 하루는 아버지가 나뭇짐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왕소금을 뿌리고 호박잎으로 겹겹이 싸서는 다 타고 남은 잿불에 구워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송이였다.

 그게 송이였음을 안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뒤였다.

 뭔지도 모르는 채 먹었던, 향으로만 기억되던 그 맛. 이후로도 오랫동안 송이는 호박잎에 싸서 잔불에 구워 먹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디서도 그런 방식으로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 그렇게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어찌 아셨을까?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 아버지와 겸상이 허용됐다. ‘예비 대주’로 인정받았던가 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처사지만, 그땐 한두 술씩 덜어주시던 아버지 밥이 왜 그리 맛나던지.

 아버지는 익혀 무친 나물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착착, 생채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풋것들을 살살 달래가며 설렁설렁 비비셨다.

 보통학교 문턱도 넘은 적 없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드물게 국문은 물론 한문까지 막힘이 없던 데다, 어디서 배우셨는지 주판셈까지 하실 줄 알아 여기저기 경조사 부조계를 도맡으시던, 깡마르고 작은 체구에도 두주불사하셨던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버지가 식구들 앞에서조차 주사를 부리거나 식언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게 남다른 미각과 문식성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리라.

 나는 최고의 먹거리로 바다에서 나는 것 중엔 복어, 뭍에서 나는 것으론 송이를 꼽는다.

 아마 가격으로도 이만한 것들은 드물 터인데, 무엇보다 대번에 혀를 현혹하는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닌지라 미각을 곤두세우고 찬찬히 음미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실은 송이에서 향을 빼면 식감 자체는 표고나 능이만 못하다.

 다른 버섯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송이는 물로 씻으면 안 된다.

 물기가 스미면 흐물흐물해질뿐더러 향이 싹 달아나 못 쓴다.

 마냥 어린아이 다루듯 부드러운 솔로 흙을 털고 깨끗한 수건이나 가제로 꼼꼼히 닦아야 한다.

 국거리로는 갓이 펴진 등외품도 괜찮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나름대로 다 쓸모가 있는 법이다.

 

송잇국과 고추장 김밥.
송잇국과 고추장 김밥.

 

키워드
#칼럼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