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관련 글을 자주 썼던 저술가 피셔의 말에 따르면 맛에 대한 기억은 장기기억이다.
그것은 대개 일화와 함께한다. 내게 가장 오래된 맛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가 따다 준 자연산 송이, 그 한 송이 맛이다.
그땐 가을걷이가 끝나면 맨 먼저 하는 일이 땔감 나무를 장만하는 것이었다.
이른 가을이던가. 하루는 아버지가 나뭇짐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왕소금을 뿌리고 호박잎으로 겹겹이 싸서는 다 타고 남은 잿불에 구워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맛본 송이였다.
그게 송이였음을 안 것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뒤였다.
뭔지도 모르는 채 먹었던, 향으로만 기억되던 그 맛. 이후로도 오랫동안 송이는 호박잎에 싸서 잔불에 구워 먹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어디서도 그런 방식으로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다. 강원도에서 그렇게 했다.
아버지는 그것을 어찌 아셨을까?
초등학교 들어가서부터 아버지와 겸상이 허용됐다. ‘예비 대주’로 인정받았던가 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처사지만, 그땐 한두 술씩 덜어주시던 아버지 밥이 왜 그리 맛나던지.
아버지는 익혀 무친 나물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착착, 생채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풋것들을 살살 달래가며 설렁설렁 비비셨다.
보통학교 문턱도 넘은 적 없지만 당시 시골에서는 드물게 국문은 물론 한문까지 막힘이 없던 데다, 어디서 배우셨는지 주판셈까지 하실 줄 알아 여기저기 경조사 부조계를 도맡으시던, 깡마르고 작은 체구에도 두주불사하셨던 아버지. 그러나 그런 아버지가 식구들 앞에서조차 주사를 부리거나 식언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게 남다른 미각과 문식성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리라.
나는 최고의 먹거리로 바다에서 나는 것 중엔 복어, 뭍에서 나는 것으론 송이를 꼽는다.
아마 가격으로도 이만한 것들은 드물 터인데, 무엇보다 대번에 혀를 현혹하는 감칠맛이 나는 게 아닌지라 미각을 곤두세우고 찬찬히 음미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실은 송이에서 향을 빼면 식감 자체는 표고나 능이만 못하다.
다른 버섯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송이는 물로 씻으면 안 된다.
물기가 스미면 흐물흐물해질뿐더러 향이 싹 달아나 못 쓴다.
마냥 어린아이 다루듯 부드러운 솔로 흙을 털고 깨끗한 수건이나 가제로 꼼꼼히 닦아야 한다.
국거리로는 갓이 펴진 등외품도 괜찮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나름대로 다 쓸모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