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욱의 세상만사] 대한민국은 도시국가로 가는가?

  • 입력 2023.11.23 11:15
  • 수정 2023.11.23 19:29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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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욱 본지 편집국장
노종욱 본지 편집국장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갈천자 천칙(天則) 편에는 이런 비유가 있다.

 옛날 초나라 땅에 가난한 한 서생(書生)이 있었다.

 그는 회남자(淮南子)를 읽고 ‘사마귀 벌레가 매미를 잡을 때 나뭇잎에 몸을 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나무를 찾아 잎사귀를 모조리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나뭇잎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 채 아내에게 자기의 모습이 보이는지 물어봤다.

 처음 그의 아내는 “다 보인다”고 대답했으나, 남편이 계속 이렇게 눈을 가리고 다니자 어찌나 보기 싫었던지 그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버렸다.

 아내의 말에 자신감이 생긴 서생은 잎사귀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길거리로 나갔고,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관리에게 “나뭇잎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당신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그는 관리로부터 ‘미친놈’ 대접을 받았다.

 일엽장목(一葉障目)이란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린다’는 뜻으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일에 현혹돼 문제의 본질이나 전모를 놓치기 쉬움’을 비유하는 말이다.

 지금도 하나의 나뭇잎으로 눈을 가리고 보이지 않는다면서 세상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메가시티’이다.

 ‘메가시티’란 핵심 도시를 중심으로 일일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능적으로 연결된 대도시권, 글로벌 비즈니스 창출이 가능한 경제 규모를 갖춘 인구 1000만명 이상의 거대도시를 지칭한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파리와 주변 일드프랑스 주를 통합, 수도권을 만드는 ‘그랑파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영국도 런던권 개발에 국가사업의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대런던 플랜’을 수립하는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도시권 구축을 위한 대대적 투자와 규제 완화가 추진되고 있다.

 메가시티의 점화와 논란은 현 여당 김기현 대표의 김포를 서울로 편입시키는 ‘서울 메가시티론’에서 출발했다.

 뜨거운 화제를 몰고 다니던 초기와는 달리 지금은 여러 이슈에 묻혀 그 분위기가 희미해지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뜬금없이 발표한 서울 메가시티는 주민들의 여론과 상관없고, 또한 거점 도시의 위성도시를 편입하는 단순한 문제는 아닐진대, 집권 여당은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바로 의원 입법 발의를 준비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덩달아 부산에 지역구를 둔 한 여당 의원은 부산·김해·양산 통합안을 주장하며 ‘메가 부산’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참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지난 김경수 지사 시절 지금은 공식적으로 무산된 ‘부울경 특별연합(부울경 메가시티)’에 세 곳의 자치단체장이 모여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부울경 메가시티의 목표는 부산·울산·경남을 통합한 초거대 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었다.

 부울경 권역 거주민들이 특별한 제약 없이도 교류가 가능한 ‘생활권역’을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행정 통합은 ‘그 이후에나 논의할 이야기’였다.

 여기에는 각각 자치단체의 절박함이 깔려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서로가 공멸한다. 청년들을 수도권으로 유출할 바에야 부산을 거점으로 인구 유출을 막자’라는 절박함으로 비수도권 지역사회에서 일기 시작한 ‘메가시티’ 구상의 핵심은 적어도 서울과 경기도만큼의 연결고리(광역화)를 지역에 만들어 메가 기능을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울경 지역에서 시도된 메가시티는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반발에 직면했다.

 광역권 외곽 지역이 반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설득과 합의의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영향력이 강해지더라도 ‘서울에 더 이상 미래 자원을 빼앗길 수 없다’는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이 지역 정치권에서 지속돼야 했다.

 2022년 6월 지방선거 이후 부울경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논의가 중단됐다.

 연임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메가시티의 당위성을 변함없이 강조했지만,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김두겸 울산시장은 각각 ‘경남 서부지역의 반대’와 ‘빨대 효과로 인해 상권이 부산에 집중된다’라는 이유를 들며 부울경 특별연합을 반대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15일 경남도의회는 부울경 특별연합의 근거 조항이던 ‘특별연합 규약안’ 폐지 조례를 통과시켰다. 지역 정치권의 메가시티 논의는 여기서 중단됐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잊혀 가던 메가시티는 1년의 세월이 흘러 엉뚱한 곳에서 부활했다.

 서울에 대항하기 위해서 대두됐던 메가시티라는 당위성을 오히려 서울이 주장하고 나왔다.

 지난달 3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경기도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김포-서울 편입’을 공론화시켰다.

 여당은 뒤이어 ‘뉴시티 프로젝트 특위(위원장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를 꾸리고 김포 외에 고양·구리·하남·부천·광명·과천을 서울에 편입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여당의 이런 움직임은 내년 4월 총선에 대비한 정치적 노림수라는 것을 국민 대다수는 알고 있을 곳이다.

 이번에 제기된 메가시티 논쟁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그 흔한 용역 보고서나 여론 조사 한번 없이 이처럼 중요한 정책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좌초를 좌시하면서 수수방관하던 이들의 말이 메가시티 찬성으로 급변했다.

 아무리 정치적 노림수라 하지만 일련의 상황에는 지역 소멸의 위기감은 없고 국민 또한 없다.

 참으로 한심하고 경악스럽다. 그토록 주창하던 지방분권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렸다.

 제발 나뭇잎 하나로 눈을 가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과연 고령화와 인구 절벽의 시기에 서울 확장과 지역 거점 메가시티가 동시에 가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풍부한 재원과 지속적 인구의 공급이 된다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지방 소멸의 시기이다.

 지방 소멸은 더욱 빨라질 것이 자명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서울 메가시티는 더욱 세차게 지방의 청년과 인재들을 서울로 빨아들일 것이다.

 몇 해 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 연설 때 어눌한 말투로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 대사였던 니퍼트도 임기 종료 회견에서 역시 “같이 갑시다~”라고 말했다.

 필자도 그 말을 참 좋아한다. 우리도 “같이 가자.”

 어떠한 이슈가 있을 때 찬성도 반대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의 본질을 잘 파악해 국민들에게 진정 이로울 것을 선택해서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를 외면하고 식상해 하는 이유는 하나다. 급조된 정책에는 국민이 없다.

 지금처럼 국민들에게 사전에 논의 없고 치밀한 계획 없는 메가시티의 주장은 대한민국을 도시국가로 만들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더욱 심도 있는 접근을 필요로 할 것이다.

 ‘같이’할 때 그 ‘가치’는 분명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오바마와 니퍼트와 같이 가자는 것이 아님은 모두가 알 것이다.

 우리 지역에 사는 모든 이들이 같이 가야 할 것이다. 그것마저 싫으면 니퍼트와 같이 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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