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태 박사의 밥상머리교육학] 쓸쓸함의 힘

  • 입력 2023.12.04 10:55
  • 수정 2023.12.04 10:56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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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태 창원 남정초등학교 교장·시인
오인태 창원 남정초등학교 교장·시인

 꽃 지는 날보다/ 꽃 피는 날이 더 쓸쓸했던 때가 있었다// 눈 뜬 어둠, 사방에서/ 꽃들이 소리 없이 펑펑 터질 때/ 나도 쓸쓸해서 숨죽여 울던 날이 있었다/ 꽃들이 너무 쓸쓸해서 피는 것이라 생각했다// 꽃 피는 날보다/ 꽃 지는 날이 더 쓸쓸했던 때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돌아서고/ 꽃들이 아직 붉은 제 몸을 서둘러 지울 때/ 나도 쓸쓸해서 무릎에 고개를 묻은 날이 있었다/ 꽃들이 너무 쓸쓸해서 스스로 목, 숨을 거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꽃이 피어도 쓸쓸하고/ 꽃이 져도 쓸쓸했던 날이 있었다

- 오인태 ‘동병상련’ 전문 -

 사람은 힘들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외로워서 무너진다. 이날 이때까지 살아보니 그렇더라.

 외로움보다 더 깊고, 더 저리고, 더 적적한,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결이 조금 다른 정서가 있다. 바로 쓸쓸함이다.

 외로움이 말 그대로 혼자 떨어져 있어 외진 느낌, 또는 함께 있다가 나만 남겨졌을 때의 상대적 감정이라면, 쓸쓸함은 어떤 대상과 상관없이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갖는 적막감, 말하자면 실존적 감정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가혹하고 힘들었던 시기는 사십 대였다.

 그때는 곁에 아무도 없는 듯 무시로 외롭고, 외로웠다.

 역설적이게도 이 외로움을 이겨내게 한 힘은 쓸쓸함이었다.

 외로움의 바닥에서 맞닥뜨린 실존적 각성, 그 쓸쓸함으로 나는 사십 대를 버텼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좋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쓸쓸하니까 인간이다.”

 외로움은 상실감과 고립감으로 자상을 입히기도 하지만, 쓸쓸함은 성찰을 통해 더 굳세고 단단한 인간으로 성숙시킨다.

 “가을 아욱국은 문 걸고 먹는다.”

 얼마나 맛있으면 이웃도 몰래 문을 걸어 잠그고 먹는 게 아욱국이라고 했을까.

 여름 푸성귀가 시들고 억세질 무렵, 때마침 제철을 맞은 가을 아욱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도 풍부해서 ‘봄 부추, 가을 아욱’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님을 알려준다.

 된장국을 안쳐 끓이다가 마지막에 아욱을 넣어 한소끔 더 끓여주면 아욱 된장국이 된다.

 보통 아욱국에는 마른 새우나 생새우를 쓰지만 된장을 풀어 끓일 때는 바지락도 괜찮다.

 된서리가 몇 차례 오기 전이라면 지금도 텃밭에 나가면 아욱이 독야청청 푸른 잎사귀를 아직 접지 않았을 것이다.

 

아욱국.
아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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