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욱의 세상만사] 어떻게 살아왔나? 또 어떻게 살 것인가?

  • 입력 2024.03.28 10:51
  • 기자명 /노종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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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욱 본지 편집국장
노종욱 본지 편집국장

  3월도 막바지다. 날씨의 수상함으로 인한 개화시기가 늦은 듯하지만, 그래도 봄은 왔다.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봄 기온으로 옷차림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물이 가벼워질 것이고 화려해질 것이다.

 내 삶의 봄은 언제였던가? 인생의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목전에 선 필자는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니 화려했지만 고통스러웠고, 고단했지만 보람도 많았다 회상된다.

 나는 또 세상에서 얼마나 필요한 존재로 살아왔는가? 가족들에게는 얼마만큼의 의미였으며 타인에게는 또 얼마만큼의 배려였는가?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이라는 것을, 목마름에 지쳐 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것을,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천국인 것을.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인 것을,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것을,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것을,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것을,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적은 것이 행복인 것을, 죽음에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것을. 결국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변에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걸러져 진짜만 남는 과정이니까.

 흘러가는 시간처럼 사람은 사라져도 좋은 순간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그 순간이 더 값진 건지도 모른다.

 사람에 연연하지 말고 오늘 하루를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다.

 도방고리(道傍苦李)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길옆의 쓴 자두나무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버린 물건이나 무용지물’을 비유한 말이다.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의 이야기다.

 진 나라의 왕융(서기 234-305년)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며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좋아했다.

 그는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즐기고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왕융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길가의 자두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자두가 달려있는 것을 봤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다퉈 그 나무로 달려갔으나, 왕융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그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왜 따러 가지 않고 서 있는 거냐?”

 왕융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무가 길가에 있는데도 열매가 저렇게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써서 먹지 못하는 자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그 자두를 따서 맛을 보니 과연 왕융의 말처럼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28일부터 제22대 총선의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은 선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겠지만 그래도 선거의 시계추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 당의 공천 과정이야 어찌 됐던 각 당의 대표는 당선을 향해 국민에게 고개 숙이기 시작했다.

 오는 4월 10일 이후로는 또 그렇게 그들의 무관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적어도 13일 동안은 국민은 그들에게 ‘갑’인 것이고 그들은 영혼 없는 웃음과 말투로 우리에게 친한 척 다가올 것이다.

 당하면서 당하는지 모르는 국민, 속으면서 속는지도 모르는 국민, 이번에는 정신 차리고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지역의 진정한 일꾼이 누군지 살펴야 한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 힘겨울지라도 좌절하지 말고 삶의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 의미 찾기’를 시작하자.

 우리에겐 삶의 자세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하자. 잃어버린 것에 대한 준비란, 준비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태세를 늘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다.

 경남도 또한 주민이 각박한 삶에 동요하더라도 중심을 잡고 위민행정(爲民行政)을 펼쳐야 한다.

 과정은 어떠하든지 결과에 대한 자세는 진취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위를 에워싸는 무리들은 부는 바람을 피하려 하지 말고 맞서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주민도 행정의 고충을 헤아리고 때로는 보호막을 형성해 줘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선을 다했으나 그 일이 힘에 부칠 때, 행정의 역량은 발휘되는 것이다.

 뒤로 숨지 말고 일단 부딪혀 일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간절히 요구되는 것이다.

 책임을 미루지 말자. 주민은 행정을 의지하고 따라간다.

 믿는 이들이 흔들릴 때, 그 파장을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게 진행 

 될 수 있다.

 행복을 큰 것에서 찾으려 하지 말자. 인생의 소소함에서 아름다움이나 행복을 발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자로 사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국민은 먹고사는 부분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국민의 먹고사는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위정자(爲政者)들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주민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국민을 도외시한다면 이제는 분명 국민은 신뢰를 접을 것이고, 당선인을 도방고리(道傍苦李)로 여기게 될 것이다.

 또 속지 말자. 이미 지나간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지나간 일은 접어두고 새로운 긍정의 힘으로 앞으로 진행이 예상되는 일들에 다 같이 힘을 합치자.

 그러고 나서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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