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뉴욕항에 입국한 독립운동가들

안창호·이상설·이위종 선생 등 1백여명 입국기록 발굴

  • 입력 2009.10.23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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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 독립운동가 100여명이 미국 뉴욕항에 입국한 기록들이 발굴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뉴욕총영사관(총영사 김경근)의 주낙영 부총영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맨해튼의 엘리스 아일랜드 재단을 방문, 최근 발견된 안창호, 이상설, 이위종 선생 등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뉴욕항 입국 기록 문서를 전달받았다.

이번 기록 발굴은 현재 한미대학생취업인턴제(WEST) 프로그램에 참여한 금교혁(26·한국외대 졸)씨가 이 재단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독립지사들의 입국 기록을 발견한데 따른 것이다.

금씨는 지난 두 달 간 100여년 전 수작업으로 된 입국 기록들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한국인들의 성씨를 발견,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귀중한 사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금씨에 따르면 국적란에 ‘코리아(Korea)’라고 쓴 사람은 약 100여명이며, ‘이(Lee)’와 ‘김(Kim)’ 등 한국식 이름을 쓰면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국적란에 ‘차이나(China)’, 혹은 ‘재팬(Japan)’이라고 쓴 사람들도 다수 있어 상당수의 한인 동포들이 뉴욕항을 통해 입국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안창호 선생은 1911년 9월 3일, 머제스틱호를 타고 뉴욕항에 입항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입국서류의 국적란에 ‘코리아(Korea)’, 직업은 매니저(Manager)로 적혀 있어 관심을 끈다. 또 1907년 6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파견한 3인의 특사였던 이상설, 이위종 선생은 1907년 8월1일, 같은 배(머제스틱호)편으로 뉴욕항에 입국한 것으로 기록됐다.

뉴욕총영사관은 “3인의 특사 중 이준 열사는 현지에서 분사(憤死)함에 따라 나머지 두 분만 뉴욕항을 통해 입국한 당시의 상황이 생생한 기록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밖에 3·1운동 당시 유학생 신분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하고 1923년 귀국 뒤 연희전문교수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한 이관용 선생이 1922년 11월 15일 입국한 기록을 비롯, 홍언, 송헌주, 윤병구 선생 등 애국지사들의 입국 기록이 다수 발견됐다.

뉴욕총영사관은 이번에 발굴된 기록이 미주 한인 이민사의 중요한 사료가 됨은 물론, 한국 독립운동사 차원에서도 귀종한 사료 가치를 지난다고 판단하고 이번 기록물을 한국의 독립기념관, 외교부(외교사료팀), 문화부 등에 송부해 추가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 바로 옆에 위치한 엘리스 아일랜드는 1892년부터 1954년 사이 뉴욕 이민자들의 관문 역할을 맡은 섬으로 입국자 심사를 맡은 붉은 벽돌 건물이 이민 박물관으로 활용돼 이민자들의 짐 가방,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엘리스 아일랜드 재단은 1892년 이후 엘리스아일랜드를 거쳐 입국한 약 2500만명 이민자들의 기록을 관리하는 재단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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