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일연탄생 800주년과 백월산

  • 입력 2006.07.04 00:00
  • 기자명 이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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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양성성도기’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문헌이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백월산에 입산해 관세음보살의 도움으로 성불(成佛)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백월산은 지금의 창원시 북면에 있는 산이다.

일연은 양성성도기를 옮기면서 백월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동기를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옛날에 당나라 황제가 어느날 못을 하나 팠는데, 달마다 보름 전이면 달빛이 밝고, 못 가운데에 산이 하나 있고 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꽃 사이로 은은히 비쳐서 못 가운데에 그림자를 나타냈다. … 그 이름은 꽃산이다. … 그런데 보름 전에는 백월의 그림자가 못에 나타나기 때문에 황제는 그 산 이름을 백월산이라고 했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니지만 나는 백월산을 수차례 답사했다. 백월산을 자주 찾는 이유는 삼국유사의 마니아로, 책에 나온 백월산이야기가 아름답기 때문이고 그 아름다운 스토리를 간직한 산이 내가 사는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답사를 할 때마다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감나무밭이나 대밭에 흩어진 탑이나 부도부재들을 발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손가락만한 토우라든가 ‘남사(南寺)’라 새긴 명문기와를 줍는 성과도 얻었다. 확실하게 증명된 사실은 아니나, 박박이 거처했던 토굴이 기존에 알려진 터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백월산에 관한 글도 수차례 썼다. 글을 쓸 때마다 생각이나 느낌이 달라지고 산에 관한 지식이 깊어져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연이 옮긴 삼국유사의 ‘백월산양성성도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얼굴이 매우 아름다운 섹시한 낭자가 박박이 수행하는 거처에 와서 한 밤중인데 요염을 뜬다. 박박이 어이가 없어서 “나는 모든 잡념이 없으니 육색을 가지고 시험하지 마라”며 쫓아버렸다. 부득에게 가서 낭자는 방문을 두드린다. 부득은 “이 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라며 낭자를 방에 맞아들인다. 새벽녘이 되자 낭자는 본색을 드러내 관세음보살로 현현했고 부득을 도와 성불시켰다. 아직 미혹이 남아 성불을 못했던 박박은 부득의 도움을 얻어 성불을 한다.

모레 6일은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탄생한 지 8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206년 6월 11일 탄생했으므로 양력으로 치면 7월 6일이다. 우리나라 사람 치고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설령 삼국유사를 모른다손 치더라도 단군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아무도 없다. 삼국유사에 단군신화가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가락국의 총각임금에게 인도여자가 결혼하러 왔다는 이야기 뿐 아니라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면 꽃을 꺾어드리겠다”며 절벽을 내려간 노인의 일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경문대왕 설화, 연오랑을 따라간 세오녀의 이야기,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서동이와 정을 통했지럴. 얼레리 꼴레리”하는 서동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민담과 설화들이 실려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 문학의 원형이고 한민족 정신사의 원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연은 한국학의 아버지이고 한국문학의 아버지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독일 민담을 수집해 책을 낸 야콥그림을 독어독문학의 아버지라고 일컫듯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연의 업적과 일연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일연이 의도한 내용을 제대로 읽지 못할 뿐 아니라 그가 제시하고 있는 유적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라는 이름만 하더라도 그렇다. 일연은 두 이름을 이 지역의 방언이라 하고, 두 선비의 마음과 행동이 등등하고 고절하다는 뜻에서 이름지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두식으로 읽어야 할 이름인데 우리는 게으르게도 한자음 그대로 읽어버리고 있다.

또 신라 경덕왕은 두 성인이 성불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큰 절을 세우고 백월산남사(白月山南寺)라는 사액을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백월산남사터에 대해 불교계나 행정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거(典據)가 있는 성도(成道)이야기이고, 일연이 직접 답사하고 조사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면서 쓴 기록인데도 말이다.

일연탄생 800주년을 맞아 이곳 저곳에서 학술심포지엄이 열리고 있다지만 우리 지역에서 일연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고 수습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이현도/문화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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