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과 왕자가 춤추던 곳…천년 전설 오롯이

울산포구기행-처용랑 설화 '개운포'

  • 입력 2010.12.07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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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을 띄운 만추의 하늘은 드높다. 잠시 가느다란 비가 흩날린다. 여우가 시집가고 호랑이가 장가를 드는 모양이다.

여우비가 내리는 가운데 울산시 남구 황성동 개운포구로 향했다.

개운포(開雲浦), 구름이 걷힌 포구란 뜻이어서 일까. 개운포에 다다랐을 때쯤 실구름이 걷히고 햇볕도 쨍쨍하다. 개운포는 삼국유사 처용랑 설화에 소개돼 있다.

신라 헌강왕(재위 875∼886)이 이곳에 왔다가 운무가 짙어 길을 찾지 못했다. 신하의 건의로 동해 용왕을 위로하는 절을 짓도록 명하자 운무가 걷히고 용왕과 용왕의 일곱 왕자가 기뻐 춤추었다. 구름이 걷힌 포구라 해서 개운포라 불렀다. 용왕과 왕자가 춤춘 곳이 처용암이고 왕자 중 한 명이 처용이다.

‘처용암’으로 진입하는 우측 ‘처용유화’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문화계뿐 아니라 산업에도 ‘처용’이라는 이름이 쓰일 만큼 처용의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짐작하며 오뚝이처럼 고개를 끄덕여 본다.

개운포에 속해 있는 세죽마을은 한때 비경을 자랑하는 어촌이었지만 이제 옛말이 돼 버렸다. 인근에 공업단지가 확장되면서 몇 해 전 살던 주민들이 거의 떠나고 공장에서 내뿜는 굴뚝 연기가 자욱할 따름이다.

주인을 잃은 선착장에는 외지에서 온 어선들이 배를 대고 어로작업을 하고 있다. 비록 공장이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지만 물빛은 나쁘지 않다. 공해물질을 바다로 내보내지 못하게 정한데다 처용암과 같은 문화재 보호로 인해 매일 정화작업을 하고 있어 수질은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어민들은 전한다.

실제 세죽마을 일대 해안가에는 멀리서 떠내려 온 쓰레기로 몸살을 하고 있어서 매일 쓰레기 수거 작업이 실시되고 있으며, 수중 정화작업도 펼치고 있다.

6대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박윤석(52)씨는 “처용암 일대에 피조개가 발견되고 있을 만큼 수질이 좋아졌다”며 “아름다운 어촌마을을 가슴에 묻은 채 곧 마을을 떠나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약 19.83㎡의 넓이로 천년 넘은 전설이 깃든 처용암을 안고 있는 ‘세죽마을’은 가는 대나무가 많아 불린 이름이다. 이곳에서 나는 대나무로 화살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울산의 대표 문화제인 ‘처용문화제’를 알리는 ‘처용제의’가 세죽마을 또는 처용암에서 열린다. 세죽마을은 울산시민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처용암을 마주하는 위치에 ‘처용가비’가 세워져 있다. 천년 시공을 넘는 시대를 반영한 것처럼 어두침침하다.

다음은 처용가의 전문이다.
“서울 밝은 달에 / 밤들이 노니다가 / 들어와 자리를 보니 / 다리가 넷이어라 / 둘은 내 것이지만 / 둘은 누구의 것인고 / 본디 내 것이지만 /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세죽마을 일대는 관광객을 위해 정자도 세워지고 주변 환경도 좋은 편이다. 이와 달리 어민이 많은 성외 마을로 가는 길은 공사 중이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성외마을은 성암동이 성내동과 대칭으로 성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밖성마을, 이곳 바다를 ‘밖성바대’라고 지역민들은 부른다.

성외어촌계에 등록된 어민은 40여명이다. 감성돔, 벵에돔 등 좋은 고기가 많이 잡히기도 한다. 큰 가마솥이 어촌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멸치잡이도 꽤 잘됐던 모양이다.

이곳 어촌계장은 곧 철거를 해야 하는 기로에 접어든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촌마을의 아름다운 옛 풍경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육지로 오른 어선만이 퇴색된 어촌마을의 역사를 알릴 따름이다. 성외마을에서 세죽마을로 넘어가는 중간 매장유적지가 눈길을 끈다. 바다와 접한 완만한 구릉으로 경작지와 택지, 공장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다시 세죽마을을 찾았을 때 정자에는 한 어르신이 꾸벅이며 졸고 있다. 설화 속 처용암을 배경으로 단잠을 청해 처용을 만나고 싶은 것일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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