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치면 바위 구멍 사이로 거문고 소리나 ‘슬도’

울산포구기행-슬도마을 ‘동진포구’

  • 입력 2010.12.14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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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 차르르~. 구멍 난 바위 틈 위로 파도가 밀려올 때면 바위는 중저음의 소리를 낸다.
바위에서 나는 소리가 거문고 소리 같다고 해서 ‘슬도(瑟島)’라는 이름을 가졌다.

울산시 동구 방어진항 끝 어촌마을 동진포구 바다(방어동 산5-3)에 위치한 슬도는 3273㎡의 퇴적된 사암으로 이뤄져 있는 무인섬이다. 이 섬 바위에 난 촘촘한 구멍은 모래가 굳어진 바위에 조개류 등이 파고 들어가 살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 같은 구멍이 섬 전체에 분포하고 있는 사례는 국내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멍 난 가슴에서 소리를 내는 바위를 등대가 위로해 주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홀로 외롭지는 않을 것 같다. 동구청에서 슬도 해상공원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에도 성끝마을에서 슬도까지 260m짜리 파제제(파도를 제어하는 둑)가 놓여져 있어서 얼마든지 슬도를 드나들 수 있었다. 슬도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느낄 수 있듯 방어진 12경에 꼽힐 만큼 섬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 아름다운 명성에 비해 그동안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던 것. 이번 해상공원 조성으로 아름다움이 재발견되고 가치도 인정받게 될 것이다.

동진포구 선착장에는 어선이 열척도 넘게 정박해 있다. 여느 작은 포구와 달리 활기가 넘친다. 선착장에서 슬도로 진입하는 길은 해상공원 조성공사로 인해 울퉁불퉁하다. 공사현장 옆으로 오토바이가 쏙쏙 잘도 비켜간다.

슬도 등대 건너편 빨간 등대 주변에는 낚시 동호회 회원이 운집해 있다. ‘오늘의 지침’이 전달되고 있는 모양이다. 낚시꾼들로 인해 마을의 가게는 그런대로 장사가 되는 듯 했다. 막다른 끝 동네에 위치해 있어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어촌마을이다.

슬도를 자주 찾는 시인은 슬도에 관한 시를 발표하기도 했고, 한 주민이 슬도 바위 위에서 해조류를 줍는 할머니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얼마나 인상 깊었으면 글을 남겼을까.

“슬도 할머니의/하루는/이렇게 시작됩니다//동이 트기도 전에/간조에 맨살 들어난/바위 위를 이리저리 건너//먹을거리 해초나 /시장에 이고 갈/골뱅이를 찾으려//바닷물을 막을/다 헤진 파란 비옷/의지하여 해초를 땁니다” (동구주민 ‘슬도 할머니’)

할머니는 아니지만, 중년 여성이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바위 틈새를 뒤척이며 해조류를 찾아다닌다. 조금만 부지런하게 다녀도 수확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이곳 슬도다.

슬도는 대왕암공원의 송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국적인 풍광 때문에 사진가들의 발걸음이 잦다. 대왕암공원에서 해안가로 통하는 길이 있고, 대왕암 진입도로에서 우측으로 빠져 진입하면 슬도로 가는 길이 나온다.

어느 길로 가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주위를 맴돌고 싶어진다. 동진포구 일대는 변화가 많았다. 선착장 일대는 집을 짓지 않고 자갈밭이었다. 지금은 자갈밭 대신 도로가 생겼고 집들도 들어섰다.

마을주민인 김모(63)씨는 “선착장 주변은 모두 자갈밭이었고 지금 가게가 있는 곳까지 파도가 몰아쳤다. 지금은 매립해 도로가 되고 사람들이 쉽게 오갈 수 있게 됐다. 선착장도 조성돼 어민들이 먹고 살기가 좋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착장에서 경사진 길을 올라 넘어 서면 대왕암공원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대왕암을 끼고 있는 울기등대는 조선시대 때 목장이었다. 이 목장의 울타리를 마성 (馬城)이라 하며, 그 끝 부분이 ‘성끝’ 즉 동진마을이다.

동진 마을에서 울기등대로 오르는 동남쪽 기슭을 ‘꽃밭등’이라고도 한다. 이 일대는 말의 분뇨로 비옥해진 땅에서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동구 지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회자되고 있다.

‘슬도’를 뺀 동진포구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진다. 나홀로 조용한 여행의 즐거움을 이곳에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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