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갯마을’ 속 ‘해순이’ 물질서 돌아와 웃음짓네

울산포구기행-‘하리포구’

  • 입력 2011.01.04 00:00
  • 기자명 황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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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마을의 아침은 등 푸른 생선을 연상하게 한다. 울산시 동구 주전동 하리포구, 부지런한 새가 지저귀며 낮은 비행을 한다. 비구름이 몰려드는 가운데 어부들이 하얀 포말을 몰고 선착장에 들어선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인이 어선의 운전대를 잡고 남자는 하선하기 위한 준비로 바삐 움직인다. 선착장에 메여 있는 줄을 잡아 선박을 묶어 놓는 남자의 솜씨가 유연하다. 모터 소리에 어느새 횟집 여주인이 고기 통을 실은 리어카를 몰고 선착장으로 온다. 눈인사도 없이 어부는 새벽에 잡은 자연산 볼락과 광어 등을 건넨다.

어부들과 횟집 주인은 오랜 세월 함께 동고동락한 갯마을 사람들이기에 서로 바라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모양이다. 횟집 주인은 고기값이 얼마인지 묻지 않아도 이미 값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는다. 고기 통이 무겁다며 남자에게 리어카를 맡기지만 남자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리어카를 끌고 간다. 갯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정서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리마을에는 며칠 전 주전항에서 출항해 사흘 동안 실종됐던 한 어선의 선장 김모씨가 살고 있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김모씨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천만다행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작은 포구인 하리마을은 바닷가 가까이 있는 아랫마을이라 해서 하리마을로 불린다. 이곳에는 20여명의 나잠녀들이 활동을 하고 있고, 어선은 7척 정도 된다. 작은 규모이지만 횟집마다 자연산고기를 쓰고 있어 맛이 일품으로 소문나 있다.

나잠녀가 직접 운영하는 횟집도 여러 곳이다. 자연산 횟집으로 유명한 나잠녀 조모(55)씨의 횟집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3채나 된다. 조씨는 ‘집이 많아 부자’라며 익살스러운 제스처를 선보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물질을 배워 누구 못지않게 바다를 사랑한다. 결혼 후 마을을 떠나 대처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바다와 함께 하지 못한 삶이 팍팍해 결국 삶의 터전인 갯마을로 다시 왔다고 한다. 물질을 하고 횟집을 운영하면서 예전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이 마을 또 다른 나잠녀인 김모(60)씨는 “예전에는 바다 속 환경이 좋아 전복, 성게 등 다양한 생물을 채취한 수확금으로 자식들 대학 보내고 결혼을 시켰다”며 “요즈음은 물이 좋지 않아 자연산 미역이 최대 수입원”이라고 설명했다.

나잠녀에겐 ‘바다’란 변함없는 삶의 터전이고 희망이다. 하지만 어촌계에서는 바다 생태계를 우선으로 삼아 마구잡이 채취를 지양하고 있다. 날씨 등을 고려해 1년 동안 물질할 수 있는 기간은 60일도 채 안 된다. 그럼에도 한 번 물질에 수입은 꽤 큰 편이다.

김씨는 “수확물은 줄어들었지만, 참 세상이 좋아졌다. 지금은 잠수복이 있지만, 옛날에는 물옷을 입고 물질을 해서 힘들었다. 파도가 치거나 비가 내려도 물에 들어가 큰 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회상했다.

이 마을은 대부분 갯마을이 그렇듯 다닥다닥 붙은 검은 돌담인 초가마을이었다. 김씨는 “우리처럼 갯가 사람들은 새벽에 물질 나가 수확한 해산물을 내다 팔기 위해 1시간 걸어 남목에서 첫차를 타고 울산장까지 갔다. 물건을 팔고 집에 돌아와 밥 먹은 후 물질하거나 나무하러 가는 등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지금은 얼마나 편한 세상인지 모른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소박하게 꾸며져 있는 ‘민박집’ 표지판이 타임머신을 타고 40~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새로 단장한 집 중간 돌담집 담장 밑에 핀 이름 모를 꽃 위로 갯바람이 스친다. 오영수의 소설 ‘갯마을’의 주인공 나잠녀 해순이가 물질에서 돌아와 함박웃음을 짓는 듯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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