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등진 어부의 마음씨 바다와 닮았다

울산포구기행-‘큰불포구’

  • 입력 2011.01.11 00:00
  • 기자명 황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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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창파에 몸을 실리어 갈매기로 벗을 삼고 싸워만 가누나. 어기야 디여차 어야디야 어기여차 뱃놀이 가잔다.’

애잔한 전설이 깃든 이득등대와 함께 한없이 넓고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울산시 동구 주전동 큰불포구에 닿으면 ‘뱃노래’의 구절이 절로 떠오른다.

이른 새벽 만경창파(萬頃蒼波)에 배를 띄워 치열하게 고기를 잡은 뱃사람이 아침 하늘이 햇살로 붉게 타들어갈 무렵 수확물을 싣고 큰불포구로 들어선다. 이윽고 해를 등지고 배를 몰고 온 어부는 가쁜 숨을 내쉰다. 어선이 선착장에 다다르기만을 기다렸던 한 남성은 반색을 하며 어부를 반긴다.

횟감 고기 외에 날치와 볼락 등 자연산 고기를 수확한 어부는 싼 가격으로 남성에게 잡은 고기를 모두 건네준다. 남성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며 꽃잎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이렇듯 포구에서의 진솔한 풍경은 이른 아침에라야 맛볼 수 있다.

포구의 아침은 생동감으로 출렁인다. 하루를 여는 시간에는 근심이나 노여움, 조급함 등을 느낄 수 없다. 바다와 함께 생활한 사람들은 어느새 바다와 같은 마음 품새를 지닌 모양이다.

이곳은 길고 넓은 큰벌 포구라 해서 ‘큰불개안’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역 안내표시판에는 ‘큰개안’이라 표기돼 있다. 인근 주전항과 비교하면 절반의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도 큰 포구로 불리는 이유가 자못 궁금해졌다.

미역작업을 하고 있는 나잠인들은 “불(벌)이 크고 좋아서 큰불항이라 부른다우. 지금은 규모가 작지만, 예전에는 규모가 상당히 큰 포구였다고 해요. 예전에는 우리 나잠인들이 큰불 일대에서 작업을 할 때마다 수확이 많았죠. 하지만 이젠 옛말이 될 정도로 지금은 수확이 좋지 않은 편”이라고 전했다.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나잠인들을 위한 ‘나잠인의 쉼터’가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한글서예가 규빈 김숙례씨가 글을 쓴 현판이 걸려 있어 눈길을 모은다. 다닥다닥 붙은 집 대부분이 횟집 또는 펜션, 슈퍼 등 영업을 한다. 모든 집들이 이득등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현재 이득등대가 있는 곳을 예전에는 ‘이득’이라고 불렀다. 이득은 큰불포구에서 동북뱡향으로 2.4km 떨어진 곳에서 간조 시 약 1m 정도 수면 위로 보였던 언덕이었다.

일제 때부터 해방 후 약 30여년 동안 언덕이 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면 배들이 부딪혀 파산, 침몰, 인명피해 등 해난사고가 잦은 곳이다. 정부에서 부표를 설치해 위험 위치를 알리고 있었으나 태풍에 견디지 못한 부표는 수차례 유실됐다. 1988년부터 1년여에 걸쳐 신공법 공사를 했다. 태양열 고정 무인등대를 설치한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하늘을 삼키려고 둔갑하는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자랑하고 밤에는 불빛을 깜빡거려 항해하는 배들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주밭(주전) 사람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돼 지금도 홀로 서있는 유일한 이득등대다.

전설에 의하면 주밭에 갓 시집온 며느리가 봄철 새벽에 뗏목을 타고 이득에 가서 버선발로 나물을 떼다 시어른 진지상에 올렸다고 해서 효부로 칭송을 얻었다고 한다.

효부의 전설이 남아서인지 특히 이곳 돌미역과 전복은 나라에 진상되는 토산물로 유명하였다고 하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선착장 옆 작은 몽돌밭 위로 파도가 거칠게 몰아친다. 파도의 숨 속에 미역, 전복, 소라, 천초 등의 향기가 전해진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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