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기 봄바람에 미역 향이 ‘솔솔~’

울산포구기행-‘제전포구’

  • 입력 2011.03.29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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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바닷가 마을 제전마을이 내 마음 속에 살포시 안긴다.

제전(梯田)마을은 남해의 다랑이논처럼 비탈에 층층으로 일구어 놓은 사닥다리 꼴로 된 논밭이 있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또 예전에 닥나무 밭이 있어서 저전(楮田) 또는 딱바라고도 불렸다.

이 마을의 봄은 유난히 분주하다. 강동 최대 미역산지라는 말이 무색치 않게 일대에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미역이 쏟아지고 있다. 자연산 미역이 나는 봄에는 마을사람들은 미역공동작업장에 모여 미역을 다듬고 말리는 작업을 하느라 일손을 놓지 못한다.

겨우내 거친 숨을 내쉬던 파도는 봄이면 어린아이의 숨결처럼 잠잠해 진다. 잔잔한 물결 위에 큰 배는 미동도 없고 중간중간에 노 젓는 배가 여러 척 떠 있다.

노 젓는 배가 왜 바닷가에 있을까 싶어 마을주민에게 물었더니 대뜸 “새끼배”라고 짓궂게 답변을 하는 마을 어르신으로 인해 순간 공동작업장 일대가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장난끼가 발동한 마을사람들은 쉽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배시시 웃음만 띄운다. 한참을 지나 겨우 한 마디를 내뱉는다.

“제전 앞바다는 수심이 얕아서 큰 배가 정박하기가 어렵지요. 해서 바다에 배를 띄워놓고 작은 배로 미역을 실어다 나르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말마따나 마을 앞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다. 미역 몇 가닥이 새끼배의 움직임처럼 살랑거리고도 있다.

이곳의 진풍경은 공동작업장의 ‘일손’이다. 익숙하고 재빠른 솜씨로 청정해역에서 채취한 미역을 다듬는 풍경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못다 나눈 이야기를 이곳에서 다 쏟아내는 마을사람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하다.

공동작업장에서 말려진 미역은 마을 공동 건조실로 이동된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제전산 건미역으로 모양이 바뀐다.

이곳 미역은 대구 등지에서 공동구매하기 때문에 제때 미역을 사지 않으면 구하기 힘들다. 공동작업장 건너편에도 두어 가구 사람들이 미역 말리기에 여념이 없다. 미역 작황이 예전만 못하다고 푸념 섞인 말이 흘러나온다.

“올해는 바닷물이 거세서 미역 3분의 2를 용왕님께서 가져가셨나 봐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포구마다 예년만 못한 수확에 사람들은 저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미역이 생산되는 봄이 가장 기다려진다고 입을 모은다.

이곳 포구에는 미역 외 장어와 고동이 주로 잡힌다. 숯불구이 장어 간판을 내 건 상가가 드문드문 보이는 가운데 선상낚시 간판이 눈에 쏙 들어온다.

최근 이곳에는 선상낚시를 즐기려는 강태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포장이 안 된 공터를 휘감아 돌면 쓰러질 듯한 빈집이 두어 채 보인다. 그 앞에는 얕은 바다에 돌들이 판지마을 널빤지처럼 차분하게 앉아 있다.

바쁜 마을 공동작업장과 대조를 이루는 빈집에도 봄햇살이 가득하다. 한줄기 바람에 미역 향이 실려 온다. 미역과 함께 시작되는 제전마을의 봄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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