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떠난 그 섬에 옛 문학 정기 오롯이

울산문인들 유배 섬 ‘남해 노도’ 삿갓이 바다에 떠있는 것처럼 보여 삿갓섬

  • 입력 2011.04.12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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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 선생이 유배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던 경남 남해의 외딴섬 노도. 울산에서 활동 중인 문인 6명이 이곳을 찾아 서포의 삶과 한이 남아있는 곳곳을 둘러봤다.

11일 앵강만(灣) 초입에 있는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양아리 벽련마을 포구에는 발 묶인 어선들이 해풍에 요동쳤다. 서포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할지 모를 기로에 서 있을 때 큰 배 한 척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선착장으로 다가왔다.

심한 파도에도 큰 배는 거뜬하게 섬을 방문하는 나그네를 실어 날랐다. 벽련포구에서 노두까지의 거리는 2㎞로 보통 때는 10분이면 오갈 수 있지만, 이날 풍랑으로 인해 심리적인 거리는 몇 배는 더 돼 보였다.

거센 파도에 배는 이리저리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인 서포 김만중이 유배지로 떠나던 날의 심경이 이처럼 요동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도(櫓島)’라는 안내판이 보이는 선착장 일대는 온통 서포의 체취로 가득한 느낌이다. 40여년간 서포를 연구해 온 전직 국문학과 교수가 잠시 머물었던 빈집이 보이고 서포 김만중 선생의 유허비도 보였다.

12가구 16명이 전부인 이 섬은 선착장에서부터 오르막길이다. 이 작은 섬에서 옛날에는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한다. 그래서 노도(櫓島)라 불렀고, 멀리서 보면 삿갓이 바다에 떠 있는 것 같다 해서 삿갓섬이라고도 불렀다.

이곳은 북쪽 선착장 주변에만 사람들이 살고 있어 겨울에는 유난히 춥고 여름에는 더운 편이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면서 좁은 섬의 땅에 농사를 짓기도 한다.

노도마을 사람들은 워낙 물이 귀하고 쌀이 귀해서 밥 한 톨, 물 한모금도 귀하게 여긴다.

남해 상주 양하초등학교 노도분교(1995년 폐교) 마당에는 동백나무 치수가 햇살을 받아 곱게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가 유난히 많은 섬이다. 또 바다를 향한 플라타너스 사이로 보는 벽련마을이 정감어리다.

폐교를 지나 1692년(숙종 18년)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서포가 유배생활 중에 직접 팠다고 전해지는 우물과 초옥, 시신을 잠시 묻었던 허묘(墟墓)로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초옥과 허묘로 가는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들어설까 잠시 망설였다. 혼탁한 세상을 문학으로 표현했던 선생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고뇌했을까.

일단 서포의 허묘로 방향을 잡고 꽤 가파른 돌계단을 올랐다. 섬 아래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묘지에서 서포가 남긴 문학 혼을 되새기니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돌계단길을 내려와 다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서포가 3년간 머물던 초옥의 안내판이 나타났다. 안내판에도 외로움이 비춰진다. 왼편으론 우물터 흔적이 남아 있고 동백나무가 초병처럼 둘러싼 초옥에는 문학의 정기가 강하게 서려있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유배의 집은 쓸쓸함이 감돈다.

산천초목 우거진 이곳에서 서포는 한을 달래며 명작을 남기는데 혼신을 다했을 것이다.

노도가 고향인 수필가 최옥연(46)씨는 “서포 선생이 머물던 초옥 마당의 동백꽃잎처럼 선생의 문학혼이 일찍이 가슴에 물들곤 했다”면서 “선생의 꼿꼿한 선비정신이 깃든 노도에는 ‘노자묵고 할배’라는 구전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초옥 앞 비탈에는 붉은 동백꽃을 수 백년 간 피우고 있는 동백나무가 나그네를 반기고 있었다.

시인 이서원 에세이울산동인회 회장은 “서포 김만중은 고산 윤선도, 송강 정철과 함께 한국 3대 고전문학가로 유명하신 분”이라면서 “울산의 문인들이 이곳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문학창작에 더욱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서포 김만중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인사들이 유배됐던 경남 남해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유배문학관이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문학관에는 서포를 비롯해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후송 유의양,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자암 김구, 약천 남구만 등 여러 문장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남해의 아름다운 섬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보물섬의 비경을 담은 사진, 마제석기를 비롯한 남해의 유물, 목판인쇄 체험장,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유배객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노도를 살며시 품은 남해는 ‘문학의 섬’으로 주목 받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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