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산책]엘리트는 사회에 빚진 자다

  • 입력 2006.07.25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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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어시장에 가 보면 각 정당 후보들과 자주 마주친다. 재선거에 나서는 국회의원 후보들은 일일이 상인들과 악수를 나누며 지지를 호소한다. 지금은 저토록 굽혀진 허리가 당선된 후에는 어찌 그리 꼿꼿해지는 지, 웬 비리는 그리 자주 일으키는 지, 권위가 섰기 때문일까.

‘권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어떤 분야에서 능히 남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지식이나 기술, 또는 실력’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렇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까지 그들의 노력은 얼마나 눈물겨웠겠는가. 그러니 그들에게 주어지는 권위는 당연한 보상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위가 권위 자체로 지켜지면 존경받는 엘리트가 될 터인데 어찌된 까닭으로 그들을 향한 존경심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일까. 그건 그들의 권위주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권위란 저절로 풍겨나는 것이어서 스스로 위엄을 갖추니 그것을 감지한 사람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며 존경하게 되지만 권위주의는 본인이 스스로 위세를 휘두르는 것이니 사회에 혐오감을 준다. 지나친 엘리트의식이 권위주의로 변질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이런 지나친 엘리트의식은 교육현장에서부터 기인한다. 사랑과 믿음이 바탕되어야 할 교육현장이 지나친 학벌주의로 치닫고 경쟁과 불신을 조장하고 ‘일등짜리만 소용되는 출세주의’교육으로 흐르고 있다. 그리하여 그 숱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소위 명문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학교장의 첫 인사가 더욱 가슴 부풀게 한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미래’라며 엘리트의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런 자존심을 갖게함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의식이 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게 하는 원동력으로 훌륭한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열심히 노력하여 목적지에 도달한 ‘여러분이 이 나라의 귀족’이라고 인정받은 자긍심이 어느새 ‘권위주의’로 변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귀족의 의무)정신은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휘두르니 분열과 분란이 생기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엘리트라는 자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올라선 것이 아닌가. 부자가 가난한 이들의 피눈물로 배 불리게 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있는가. 기업이 노동력없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의 기름진 얼굴은 이웃과 가족들의 눈물이 아닌가. 가족의 희생없이, 이웃과 동료들의 격려와 희생없이 저 스스로 잘나서 엘리트가 됐노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그들은 이웃과 사회에 빚이 많다. 내 가족과 이웃, 동료들의 희생이, 따라서 그 가족과 이웃, 동료들에게 아픔과 고통을 남기고 차지하게 된 자리이니 만큼 그들이 차지한 권위는 당연히 가족과 이웃에게, 넓게는 사회에 돌려 주어야 마띵하지 않은가.

그러니 교육현장의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에게 엘리트의식을 심어줄 때 곁들여 ‘너희는 사회에 빚진 자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해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너는 친구의 등을 밟고 오르는 것임을 인식시켜 주었으면 한다. 그 친구 역시 너에 못지 않은 역량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이나 건강 등의 조건이 따르지 못하여 울며 도태된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하지 않았느냐며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진정한 인간애를 가지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사회지도층이 진정 빚진 자임을 인정하여 이제 때가 되어 되갚는다는 자세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국민은 저절로 고마워 하며 또 그들을 신뢰하고 따를 것임은 자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쉽고도 당연한 것을 어찌 그리 소홀히 지워 버리는지 답답하다.

강정이/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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