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자연은 옛말… 척박한 세상만 덩그러니

울산포구기행 - ‘처용포구’

  • 입력 2011.04.19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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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을 이룬 중요한 원형의 하나이지만 온산부두 건설로 인해 사라진 울주군 온산읍 이진리 포구마을. 이 마을뿐만이 아니라 천연기념물인 목도를 감싸고 있던 방도리, 산암리 마을도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을 버리고 이주해야만 했던 마을 사람들의 아픈 상처처럼 포구는 곪아있다. 마을 일대를 아름답게 꾸몄던 바위들도 이젠 볼 수 없게 됐다. 다만 전설의 한 대목처럼 간간이 전해질 뿐이다.

사라진 포구 이진포구 일대 해안은 해식애(해안 절벽), 파식대(해안 평탄한 지형), 타포니(벌집 모양의 화강암 풍화지형) 등 다양한 해안지형으로 인해 자연사박물관으로 통하기도 했다.

수천, 수만년에 걸친 풍화 작용으로 생긴 화강암 타포니(벌집바위), 핵석(돌알바위) 등 모양이 독특하고 원형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이었다.

보물 중 보물이라며 환경단체와 역사교사모임 등에서 이진리 해안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요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발의 힘에 밀려 이진리 해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했다. 다만 범의 형상을 닮은 바위라 해서 이름 붙여진 ‘범바위’와 태양을 가릴 듯 넓은 바위라 해서 ‘차일암’이라고 불린 몇 개의 바위만 보존돼 있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이 또한 일반인 접근 금지로 인해 유명무실하다.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옛 포구 주변을 맴돌아도 ‘범바위’와 ‘차일암’을 찾을 수가 없다.

공장 관리인의 안내로 이진포구 위치를 알게 됐지만 ‘접근 금지’라는 또렷한 관리인의 목소리가 따갑게 느껴진다. 돌아서면서 차일암과 범바위의 모습만 그려보았다.

이진리의 옆 동네 산암리와 방도리 마을도 쉽게 접근할 수 없다. 포구가 사라진 자리에 공장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방도리 포구마을은 동물의 눈을 닮았다 해서 ‘목도(目島)’라 불린 섬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청의 출입허가를 얻으면 접근이 가능하다. 분기별로 S오일 측이 목도 주변 청소에 나설 때에 동행이 가능할 수도 있다.

목도에는 동백나무, 후박나무, 사철나무, 다정큼나무, 송악 등의 상록수종이 많고 볼레나무, 벚나무, 팽나무, 쥐똥나무, 노린재나무, 계요등, 칡, 곰솔 등이 얼키설키 살아가고 있다. 동해안에는 섬이 거의 없는데 상록수림이 우거진 섬으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해 학술적 가치 또한 높다.

목도는 처용암처럼 전설이 간직된 곳이다. 개운포 연안의 어느 청년이 그물에 걸린 인어 아가씨를 우여곡절을 겪으며 구해주자, 용왕이 인어공주와 혼례를 치러주고 지금의 목도를 바다에서 솟아나게 하여 그 섬에서 살도록 해 주었다고 한다.

전설 속 청년은 뭍에서 섬으로 이주를 했지만, 현재 방도리 마을 사람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도시 유민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이 가운데는 역이주한 원주민이 꽤 있다.

사라진 이진포구와 방도리포구에서 어로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처용리마을 해안에 모여들고 있다. 이들은 배를 댈 수 있는 곳을 찾아 외황강이 유유히 흐르는 처용리마을까지 찾아들었다. 이 또한 언제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처용리마을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육중한 공장 건물을 끼고 예전 소로 길에 들어서면 풍작을 이뤘던 배나무가 오염에 찌들어 메말라가고 있다. 이 나무가 이주한 포구마을 사람들의 작은 세상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뱃일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처용리마을, 포구의 기능을 하면서도 포구라 할 수 없는 막막한 세상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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