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차라리 겨울에 떠납시다

  • 입력 2006.07.27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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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물난리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휴가를 떠난다고 난리법석을 떨 것이다. 휴가(休暇), 글자 그대로 일정기간을 정하여 쉬는 일이건만 꼭 멀리로들 떠나 고생을 하고와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보통 번거로운 일인가.

각 기업체마다 이번 주말부터 정기 하기휴가가 시작된다. 공단의 대기업들이 시작하니 예하 하청기업들도 따라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여름철만 되면 휴가다, 피서다 하여 전국이 또 한번 한민족 대이동이 일어난다. 설이나 추석때의 민족 대이동은 조상숭배와 고향을 찾는다는 나름대로의 대의명분이라도 있지만 피서소동은 그런 명분도, 실리도 없는 데다 너무 몰개성적이다.

언필칭 지금의 시대를 다양화시대니, 개성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눈에 튀는 소위 개성파들이 온 나라를 휘젓고 다닌다. 자기만의 멋, 개성연출이라면 배꼽을 내놓고 다녀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도대체 나는 나지, 결코 남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풍조가 신세대들을 지배하는 주사조(主思潮)가 되고 있고 기성세대들 역시 자신도 모른 채 끌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모두들 외양만 다양해진 게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자기만의 개성을 연출하는 데는 ‘의식개혁’이란 이 시대의 대명제(大命題) 또한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름휴가에 관한 한 이런 명제들은 무색해진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일단 무조건 떠나고 본다. 젊은이들은 저들끼리 떠나고, 공무원들이나 일반 직장인들은 순번 정해 떠나고, 순번 정하기 애매한 생산공장이나 동네 약국, 세탁소들은 아예 문까지 걸어 잠그고 따라나선다. 모두 이 대열에 빠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남부여대(男負女戴)해 그것도 꼭 사람들이 들끓는 곳만 찾아 끼어든다.

이 대열에는 그 잘난 자기만의 멋도, 개성연출도 증발되고 메뚜기떼에 섞이듯, 개미떼에 섞이듯 몰개성의 대열에 끼어 탐닉할 뿐이다.

이러니 인청국제공항이 넘쳐나고 평소 4시간이면 족하던 서울∼강릉이 10시간, 5시간대의 서울∼삼척이 12시간이나 걸렸다는 기사가 날 법도 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휴양지마다 주차난으로, 바가지요금으로, 또 쓰레기로 짜증나는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기사는 이 여름 내내 단 하루도 빠질 날이 없을 것이다.

피서지마다 몸살을 앓고 있을 때 피서를 떠나지 못한 시민들 또한 나름대로의 허겁증(虛怯症)을 느끼게 된다.

앞집도, 옆집도 피서를 떠나 밤새도록 불이 켜지지 않아 섬뜩한 데다 모기약을 사러 약국을 찾아도, 세탁소를 찾아도 예고된 적 없는 ‘여름휴가’란 종이 쪽지 한 장 달랑 붙어 있을 뿐이다.

네가 여름휴가를 가니 나도 가야 한다는 건 이 시대에 걸맞지 않다. 다만 작업장이 너무 더워 부적합한 일부 생산공장이나 그런 업소에선 정말 여름휴가가 재충전을 위한 휴가일 수 있을 것이다. 또 애들이 방학을 맞아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적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애들에게도 여름방학, 겨울방학, 봄방학까지 여러가지 휴가가 준비돼 있다. 굳이 어른들이 같은 시기에 여름휴가란 것을 만들어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여름 정기휴가를 없애는 것이 어떻겠는가. 차라리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중 자기가 가장 필요한 날을 선택케 하면 이런 북새통이 좀 가시지 않겠는가. 연가(年暇)를 적절히 활용케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개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제 휴가도 남들과 좀 다르게 한번 떠나 보자. 북적대는 여름바다 대신 쓸쓸한 겨울 바닷가는 어떤가. 눈덮인 산사(山寺)에서 오붓이 하룻밤 지내고 오는 건 어떤가.

왜, 최백호란 가수가 불렀던 이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한석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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