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월드뮤직(53)]대만의 문묘제례악

  • 입력 2011.07.21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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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대강 둘러보면 대만의 실정을 90%는 알게 된다고 할 정도로 대만의 정치, 경제, 문화는 불교사원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사원의 역할이 이러하다 보니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통을 잃어버린 중국 본토에서 대만의 총림더러 다시 본토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대나 뭐래나. 그래서 대만 최대 총림을 창설한 성운(星雲)대사의 고향인 난징(南京)에 어마어마한 불사를 하고 있다니 눈이 휘둥그레질 준비를 미리 해야겠다.

하여간 대만의 사찰을 둘러보면 흥미로운 것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한국 사찰 종루에서 성물(聖物)처럼 쓰이고 있는 목어와 운판이 대만에서는 식당 문 앞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아니 법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목어와 운판을 식당 문 앞에 걸어 두다니.” 더구나 운판과 목어를 밥 먹으러 오라거나 대중을 불러 모으는 신호로 사용하고 있다니 이걸 어찌 이해해야 하나.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에서 가져간 사발을 일본에서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는 상황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여한 이것도 문화의 전이 현상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때로는 역류하는 문화도 있다. 중국의 성현들께 드리는 제사음악이 한국에서 보존돼 동양 최고(最古)의 음악이 됐으니 그것이 문묘제례악. 음률을 들어 보면 한 음을 내고 그 끝 음을 올려 맺고, 또 한 음을 불고 올려 맺으니 리듬은 없고 율(律)만 있는 정도이지만 고대 악기로 진중하게 울려내는 음향은 그 어떤 음악 못지않게 감동을 준다.

제례악이라면 한 음 한 음이 우주를 울리는 진중함이 있는 신령스러운 것인 줄만 알았는데 대만 절의 식당 문 앞 운판과 목어만큼이나 친근하고 만만하게(?)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됐으니 난화(南華)대학 아악(雅樂)단의 ‘대성악장(大成樂章)’ 즉 한국의 문묘제례악이었다.
악곡의 시작을 알리는 박을 치고는 첫 음으로 축을 두드리는데 그 두드리는 법도며 악기의 색깔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푸른색을 칠하여 동쪽을 상징하며 악곡이 시작할 때 두드린다. 흰색을 칠하며 서쪽을 상징하는 어(御)는 톱니 같이 생긴 호랑이 등을 스르륵하고 음악이 끝날 때 긁었다.

그런데 난화대학의 축은 노란 빛깔인데다 악기를 치는 채는 방망이로 내려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친다. 이어서 북통을 막대에 매단 ‘노도’는 북채를 돌려서 소리를 내는데 한국의 것은 악사가 두 발로 북 자루를 고정시켜서 칠 만큼 크고 우람한데 대만의 것은 양손으로 들고 돌리니 그 소리가 훨씬 가볍다. 양편에 배치된 편종과 편경은 한국의 제례악에서와 같이 비슷한 절주이기는 한데 다소 가볍다. 정면에 8개의 종을 매단 편종도 있는데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크기라 한국 편종 편경의 웅장함과는 너무 다르다.

선율은 한국의 문묘악처럼, 한 음을 불고나면 끝 음을 들어 올리지 않고 맺으니 싱겁기도 하거니와 템포가 빨라서 고풍스런 맛이 없다. “自生民來 誰底其盛”하고 두 소절 노래하고 나니 두 사람의 무용수가 황금빛 두루마기를 입고 꿩의 깃털이 꽂힌 의물을 들고 나와 춤춘다. 한국의 궁중악사들이 입는 ‘홍주의(紅紬衣)’가 임금의 홍포와 같은 색이라면 이들의 노란색은 황제의 황금빛에 맞춘 것이리라. 그런데 한국에서도 ‘춘앵무’는 노란 빛깔의 두루마기이었으니 악사들의 복색을 단순히 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 중국과 대만 스님들의 승복은 황색 계열인데다 수륙법회와 같이 장엄한 의례에는 더욱 밝은 황금빛 장삼을 입는데 이는 최상의 지위인 황제의 금빛 복색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율명의 첫 음이 누를 황(黃)자의 황종(黃鐘)이라. 황제는 모든 사물과 이치의 근본이니 땅의 색깔인 황색인데다 궁상각치우 음계의 첫 음이 ‘궁(宮)’이니 가장 낮은 음이 곧 황제의 음이다. 이는 한국의 궁중악 수제천에서 아쟁이 앞에 턱 버티고 낮음 음의 위용을 부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사람들도 예전에는 땅이 평평한 줄 알았기에 금(琴)이나 쟁(爭)과 같은 악기의 밑판을 평평하게 해 땅을 본 땄다. 위판은 둥글게 만들어 하늘을 상징하게 했다. 악사들의 복색이며 율명과 악기의 모양새까지 어느 것 하나 무심한 것이 없으니 그것은 모두 공자의 예악 사상을 따른 궁중악의 상징체계이다.

명대에 들어 새로이 만든 고전 문헌을 근거로 재현하였다는 난화대학 측의 설명을 감안해 볼 때, 고려시대에 송대의 대성아악을 수입해 그 전통을 이어온 한국의 문묘제례악이 훨씬 고전미가 있을 것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악곡은 조선시대 세종 대에 중국의 ‘대성악장’을 본으로 재정비된 것임을 감안해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중국의 귤을 한국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음악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소프트웨어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다. 세요고(細腰鼓)가 한국에 들어와서는 커다란 장구가 됐다. 가볍고 재빠른 타법보다 눅눅하고 긴 울림을 좋아하는 한국 특유의 기질이 엿 보이는 대목이다. 악기건 음악이건 민족이 달라지면 어쩔 수 없이 중국은 중국, 일본은 일본, 한국은 한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 시공(時空)을 달리하는 음악을 두고 너무 겨루며 우열을 가리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듯하다. (아무튼 본고에서 논한 난화대학의 문묘제례악은 아래 사이트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 독자 제위께서도 나름의 소견을 피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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