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 앙코르와트 인형극…동남아<7> 캄보디아③

음악과 여행 프놈펜

  • 입력 2011.11.03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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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에서 시암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 비행기가 참으로 가관이다. 마치 50년 전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낡고 허름한 몸체 앞에 귀청이 찢어질 듯이 프로펠러가 돌아간다.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을 안고 탑승 계단을 올랐다.

좌석에 앉고 보니 시트마다 한글로 된 안내 문구가 있다. “상공을 날 때 기내에 하얀 기체가 유입되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구름입니다.” 뭐 대강 이랬던 것 같다. 비행기 창문으로 구름이 들어온다. 호기심이 서서히 불안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비행기가 상륙하자 몸체가 기우뚱 하면서 휙 도는데 마치 심장에 금을 긋듯이 서늘했다. 온 나라가 홍수에 잠긴 듯이 황토 빛 물로 덮인 동남아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쁨도 잠시, 땅으로 곤두박질을 치듯 떨어지는 비행 기류에 용을 쓰며 손잡이를 잡아보지만 떨리는 가슴을 가눌 길이 없다. 바로 그때 기내로 하얀 연기가 스며들기 시작했으니 “오호라 요것이 구름이라고?” 그 와중에도 빙긋한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갖은 스릴과 신기함의 순간들을 넘기고 시암 땅에 내려서니 얼마나 반갑고도 편한지. 새삼 땅에 발을 딛는 것이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숲속에 잠긴 앙코르와트 입구에 당도하자 부채 머리 모양을 한 거대한 코브라가 우리를 맞이한다. 성 담벼락을 온통 덮을 듯 길고도 긴 몸집은 태양과 뱀을 숭배한 크메르족의 부활인 냥 햇살아래 나른히 누워있다.

서쪽 회랑 1층, 라마야나의 이야기 ‘랑카의 전투장면’이며 비쉬누 신을 영접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들을 지나 압사라의 춤을 보니 마치 프놈펜에서 본 궁녀들이 그곳 벽화 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봐도 봐도 끝도 없는 벽화들과 석실들이라 제대로 보려면 한 달을 꼬박 보아도 모자랄 곳이다. 그만 어느 석실에 털썩 주저앉아 그 시절 크메르인들의 상상계로 날아가 봤다.
이곳 처녀 총각들의 전통 춤과 노래를 즐길 수 있었다. 윗도리를 벗고 짧은 팬츠만 입고 머리를 동여맨 총각들의 모습이며 놋쇠로 만든 징을 두드리며 추는 춤에, 대나무 막대를 치는 것, 물레를 잣는 처녀들이며, 몇 몇 춤들이 프놈펜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잠이나 잘 걸”하는 마음에 다소 시큰둥해서 그만 숙소로 돌아갈까 하는 중인데 그림자 인형극을 한다기에 다시 앉았다.
프놈펜에서도 캄보디아의 전통 그림자극을 봤지만 이곳 그림자극은 도시의 전문가들과는 다른 아기자기하고 정감이 있는데다 무대 뒤 광대들의 모습은 더욱 흥미로웠다. 항시 남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던 입장이라 이들의 공연을 그냥 객석에서만 보기에는 성이 차지 않아 인형을 조종하는 막간 뒤로 가 봤다.

우리네 같으면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엄한 쫓김을 받겠지만 그들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하얀 커튼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은 몇 사람의 어른을 중심으로 소품을 보조하는 아이들이 여럿이었다. 인형의 머리며 옷, 효과음을 내는 가지가지 물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이, 얼핏 보면 잡동사니 같지만 이야기의 줄거리 마다 필요한 가지가지 물건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말끔한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고 들여다보자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반가운지 방긋 웃으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다. 무대 뒤 맨 바닥에 앉아 인형을 놀리는 광대들을 보니, 양손으로 인형을 밀고 당기면서 대사와 노래까지, 때로는 깔깔대고 웃고, 때로는 고함도 치고 울어야 하는 막간 뒤의 광대들의 움직임이 무대 앞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가 있었다.
프놈펜에서 봤던 내용들은 대개 라마야나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는 것이라 배우들의 음성이며 연기들도 중후하고 점잖은 분위기였다면 시암에서의 그림자극은 민속적 얘기를 엮어 가는지라 무대 뒤 광대들의 분위기는 털털하고 느슨한데다 익살스러운 장면들이 많아 더욱 재미가 있어 안 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동남아에는 어디를 가나 인형극이나 그림자극이 있다. 각 나라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베트남의 물 위의 인형극은 긴 막대 끝에 인형을 매달아 조종한다. 캄보디아에서는 가죽에 구멍을 내 빛을 투여하는 방식이 독특했다면, 태국에서는 가죽을 사람모양으로 만들어 대나무 막대를 붙여서 조정했고, 미얀마에서는 천으로 인형을 만들어 줄로 당기는 것도 있었다.
시암 사람들이 인형을 조정하는 모습이 어찌나 재미나던지 기념품 가게에서 비슷한 가죽 인형을 하나 샀다. 그런데 이것이 조금만 부딪히면 가죽에 달린 막대가 부러질 판이라 들고 다니느라 애를 먹었다. 이렇게 힘들게 가져왔건만, 이를 본 식구들이 “귀신 나게 웬 꼭두각시냐”고 핀잔이다. “에구~ 안 봐서 모르네. 이거 요렇게 하면서 노래도 하고 소리치고 깔깔 웃는 것이 얼마나 재미난데.”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이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외면 받은 그 인형은 지금도 나의 서재 구석에 콕 박혀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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