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없는 결혼식’ 유행 넘어 붐으로…

주례가 성혼선언문 낭독·양가 부모 덕담

  • 입력 2011.11.07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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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참석한 회사원 최지현(26·서울 남가좌동)씨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주례는 온 데 간 데 없고 사회자 1명만 서 있을 뿐이었다. 신랑신부가 입장한 뒤 주례가 등장하려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성혼선언문도 주례가 아닌 사회자가 낭독하는 등 사회자가 모든 것을 맡았다. 주례사 대신 신랑신부 부모가 나와 덕담을 했고, 주례가 있는 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을 할 때 간단히 “네!”라고 답하는 여느 신랑신부와 달리 “와줘서 고맙다. 행복하게 살겠다”라며 인사까지 했다. 사회자의 맛깔나는 진행으로 축가 등 간단한 축하 이벤트가 펼쳐지더니 신랑신부가 퇴장하면서 예식은 막을 내렸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의 사회자는 화려한 입담, 뛰어난 임기응변 능력을 바탕으로 홀로 30분 이상 예식을 이끌면서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들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주례 있는 결혼식에서는 신랑의 친구가 주로 사회를 보지만, 주례 없는 결혼식의 사회자는 탤런트 개그맨 전문MC 레크레이션지도자 등 전문가들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 유행은 연예인들이 선도했다. 개그맨 정형돈(33)과 방송작가 한유라(29), 가수 타블로(31)와 영화배우 강혜정(29), 개그맨 김원효(30)와 심진화(30) 커플 등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관심도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활성화의 가장 큰 이유는 주례를 모시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 때문이다. 예비 신랑신부가 가장 많이 주례를 부탁하는 은사의 경우, 평소 연락 한 번 하지 않다가 결혼식을 앞두고 불쑥 찾아가 청하자니 어색하다. 또 취업 준비에 급급하다 보니 대학 시절 교수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일도 흔치 않다.

게다가 주례를 부탁하러 찾아갈 때, 결혼식 당일, 신혼여행 다녀와서 등 3차례에 걸쳐 이런저런 사례와 선물을 해야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랑이나 신부가 명문대를 나왔거나 남부러워 할 직업을 가졌을 때, 양가 중 한 쪽이라도 저명인사와 인연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남들이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주례를 모신다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이런 현실에서 활동 중인 것이 전문 주례자다. 이들의 은퇴 전 경력은 남들이 대단하다고 여길 정도다. 주례를 소개할 때 최소한 ‘꿇리지’ 않는 데다 비용도 은사나 친분있는 어른을 세울 때보다 오히려 저렴하다.

결국, 주례 없는 결혼식은 전문 주례 시대의 다음 단계라 할 수 있다. 생면부지 전문 주례자를 세워 판에 박힌 덕담을 하게 하느니 차라리 축복은 부모에게 받고 나머지는 사회자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하다. 대부분 연예계 종사자이다 보니 사회자의 경력이나 인지도가 가장 크게 좌우한다. 진행 시간이나 내용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50만원부터다. 전문 주례와 친구 사회자가 결혼식을 맡을 때의 총비용과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사회자가 TV에 얼굴을 비춘 탤런트나 개그맨 등 연예인인 점을 감안한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이미 3년 전에 이 일에 뛰어들어 200여회에 달하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진행, 이 분야의 선두주자가 된 탤런트 유승민(37)씨만 해도 결혼식 진행요청 쇄도로 본업인 연기를 잠시 접어둔 상태다.

유씨는 “알차고 재미있고 게다가 의미까지 있는 결혼식을 원하는 젊은 커플은 물론 이미 한 차례 이상 결혼식을 올려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가족모임 형태로 결혼식을 하려는 돌싱커플, 마땅히 모실 주례가 없는 60대 이상 황혼결혼식 커플 등 다양한 신랑신부가 택하고 있다”며 “결혼식이 몰린 지난달에는 하루 3~4회를 해도 다 못 소화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처럼 일이 몰리면서 유씨는 아예 김규철(32), 조인기(31), 김한배(34), 최기영(29), 김용석(29)씨 등 이 계통에서 남다른 인기를 누려온 MBC, SBS 공채 출신 개그맨들, 아나운서 출신 MC 이윤영(31)씨 등과 손잡고 ‘BB MC군단’이라는 주례 없는 결혼식 전문대행사를 차렸다.

그러나 모든 하객이 주례 없는 결혼식에 호응하는 것은 아니다. 젊은 하객들은 대체로 “신선하다”, “재미있다”, “나도 한 번 해볼까?” 등 즐겁거나 흥미로운 표정들이다. 하지만 연로한 하객 중 일부는 “저게 뭐야?”, “결혼식이 품격이 없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
개그맨 김용석씨는 “주례가 없는 결혼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면서 “반짝 유행하기보다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알아가는 결혼식 문화가 될 것이고 우리가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단 젊을 때는 점점 더 늘어날 주례 없는 결혼식을 열심히 진행하고 나이가 들어 사회자를 하기 어려워지면 주례 없는 결혼식이라는 무례를 범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뒤 전문 주례로 나서서 인생 이모작을 일굴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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