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 최승희 춤으로 조명되는 한국 예술 문화

10일, 한·중·일 최승희 삶과 예술·춤 메소드 워크숍 펼쳐

  • 입력 2011.11.09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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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무용의 여명을 연 무희 최승희(1911~1969)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녀의 창작정신과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1·12월 두 달간 두 차례 학술 심포지엄과 한·중·일 최승희 제1세대 생존제자들이 참여하는 회고와 증언, 영상으로 보는 최승희의 삶과 예술, 최승희 춤 메소드 워크숍 등이 펼쳐진다.
10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에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주최로 ‘최승희와 한국 근대무용’ 심포지엄이 열린다.

근대무용의 선구자 최승희의 예술세계를 집중 분석하는 자리다. 근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되는 최승희의 존재론적 의의를 근대성 담론에 토대해 심층 논의한다.
12월 5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대강당에서는 최승희 춤의 아시아적 가치와 동아시아 확장성을 조망하는 국제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다. 제1부는 학술심포지엄, 제2부는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참가한 최승희 제자들의 회고와 증언으로 이뤄진다.

최승희 탄생 100주년 기념회는 “특히 국제학술심포지엄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무용학자와 무용가들이 참가한다”며 “민족 고유의 전통과 미학이 담지된 최승희 춤이 근대 동아시아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 속에 어떻게 스며들어 진화하고 확장해왔는지를 탐색함으로써 한국 춤의 위상과 문화적 우수성을 재확인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12월 한달 동안 춤 자료관인 서울 동숭동 연낙재에서는 최승희의 치열한 삶의 여정과 예술활동, 그리고 대표작을 영상으로 되짚어 보는 행사를 마련한다.
최승희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신 무용이라는 새로운 춤 사조를 창출한 선구적 인물이다. 1930년대 후반 한국 춤의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떨쳤으며 중국의 매란방, 인도의 우다이 상카르와 더불어 아시아 출신 세계적인 무용가로 인정받았다.

1947년 월북, 김일성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해 무용극 창작에 주력하면서 북한무용 초기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남편 안막의 몰락과 함께 최승희 역시 1960년 이후 북한 무용계 중심에서 밀려나며 1969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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