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흰가루병의 방제 전략

  • 입력 2011.11.24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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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은 현대 분자생물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농업 생태계는 사람이 경작하고자 하는 작물과 그 주변에서 작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여러 가지 미생물과 미소동물 그리고 또 다른 식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의 관계는 농업 생태계 내의 미소 기상환경과 대 기상환경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루이스 캐럴이 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은 최근에 영화화되어 많은 관객이 관람하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붉은 여왕과 앨리스가 계속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환경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붉은 여왕의 경주’에 대한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붉은 여왕과 앨리스가 달리는 것과 같은 속도로 주변 환경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생물학에서는 생물간 공진화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모델로 붉은 여왕의 경주를 꼽는다.

공진화는 같은 영역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서로 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상대방의 진화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이질적인 두 생명체 간의 관계는 서로 간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 양자 중 한 쪽에게는 이익이나 다른 쪽에는 손해인 경우(기생), 양자 중 한쪽에는 이익이며 다른 쪽에는 아무 영향이 없는 경우, 양자 모두에게 이익인 경우(공생)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서로 간의 관계가 어느 한쪽이나 양쪽 모두의 생존에 필수적이면 필수적일수록 공진화의 속도는 빨라진다. 그러므로 공진화의 속도가 가장 빠른 관계는 절대적 기생과 절대적 공생이다. 한 쪽의 변화는 상대방의 생존에 절대적인 변화를 일으킬 확률이 높고 이로 인해 생긴 선택압력은 상대방의 무작위로 변이된 자손들 중 새로운 변화를 극복하거나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체나 집단을 선발하도록 작용할 것이며 선발속도는 두 종 간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의 반복과 집적은 유전체의 변화를 일으키고 결국 종의 분화로까지 이어지게 되며 따라서 활발한 종 분화는 그 계통의 생물 종이 변화하는 생태계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물체는 유전체에 수록된 유전자 정보의 구체적·입체적 발현물이다. 공진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생물 상호간 영향에 의해 후손의 유전자 정보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병원균을 연구하다 보면 흰가루병을 계속 접하게 된다. 흰가루병균은 7000만년 전 피자식물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래 그 종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여 현재 약 820속, 2만종 이상의 흰가루병이 보고되어 있으며 생태학자들은 10만종 이상의 종 및 아종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한 분화는 대단히 전문화되어 있어서 흰가루병들은 인공 배양이 불가능하든지 대단히 어려운 반면 병원성이 상대적으로 덜 분화된 병원균들은 병원성이 없는 부생균들처럼 인공 배지에서도 잘 자란다.

일반적으로 종 분화의 증가는 처해진 생태계에 그 종이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딱정벌레는 현재 절지동물 중 가장 번성하고 있는 곤충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약 35만종이 보고되어 있다. 이러한 딱정벌레 종 및 아종의 폭발적 증가 또한 양치식물에서 나자식물을 거쳐 피자식물로 식생이 변화될 때 일어났으며 전문화된 종 분화의 결과 극지와 바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육상 생태계에서 딱정벌레가 발견되지 않는 곳은 없다시피 하다.
위의 가설이 맞는다면 흰가루병의 유전체에서 가장 빨리 변화하는 부분은 특정 기주와의 특이적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는 부분일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이에 기초하여 흰가루병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많은 흰가루병의 전체 유전체를 모두 해독한 다음 병원성이 상대적으로 덜 분화된 병원균들이 가지고 있는 부생성의 병원성 인자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였다. 놀랍게도 병원성이 상대적으로 덜 분화된 병원균인 도열병균은 유전체에 부생성 병원성 유전자를 수백개 이상 가지고 있었던 반면 흰가루병균들의 유전체에는 부생성 병원성 유전자가 8개만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흰가루병균들이 기주와의 관계를 전문화시키기 위하여 부생성 병원성 유전자를 계속 유전체로부터 퇴출시키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병원균의 진화 경로 추적은 우리의 병 방제 전략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일방적인 농약 남용과 단일 저항성 작물의 독점적 재배는 병원균의 분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병원균의 공진화를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병 제어 전략의 출발점으로 병원균이 어떤 식으로 진화해 왔는지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농촌진흥청 신작물개발과 / 안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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