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고대 이집트인의 일상 속 ‘류트를 타는 나부’

  • 입력 2012.03.19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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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박물관 1층, 파라오들의 위압을 벗어나 2층으로 오르니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일상을 느끼게 하는 소소한 물건들이 가득하다. 보물실, 가구실, 로마전시실, 아시스와 아프로디테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소소한 구경거리들이 파라오들의 위용에 짓눌린 긴장을 풀어준다. 이런 유물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세의 삶에 필요한 장례 용품들은 그렇지 않다. 그 가운데는 죽은 이의 부적 역할을 했던 금은보화들이 그득하니 도굴꾼들에겐 최고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신왕국 시대의 고분에서는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를 비롯한 장례 용품들이 특히 이채롭다. 여러 가지 용품들을 보며 걷는데 로마 전시실 저만치 어떤 여인네가 머리에 항아리를 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가서 보니 치마를 훌러덩 올리고는 음부가 다 보일 지경이다. 아니 무덤 속에 왠 포르노? 적혀있는 글자를 보니 ‘이시스 여신’이란다. 숭고하고도 우아해야할 여신이 왜 이런 폼으로 서있을까. 사연을 듣고 보니, 이시스 여신이 이렇도록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한데는 여인의 풍만한 육체를 애호했던 그리스인들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란다. 이집트에 그리스 영향이라?

기원전 356년 그리스 펠라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가 훗날 아라비아를 침공했다. 이후 그리스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집트 예술에는 두 문명이 갖고 있던 신들이 뒤섞여갔다. 그 중 대표적인 예가 이집트의 이시스와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다. 이들은 종종 동일한 여신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런데 치마를 들어 올린 이 여인의 무엇을 보고 ‘이시스 여신’이라고 판단한 것일까. 알고 보니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것은 항아리가 아니라 화관이었는데, 거기에는 이시스 여신을 상징하는 암소의 뿔과 태양 원반이 그려져 있었다. 여신상의 크기가 작아서 사실 모르고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작은 상은 그 당시 결혼할 때 신부가 지참해 갔던 물건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한편, 세계에서 멋내기라면 일등인 한국 여인네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이집트인들도 외모에 상당히 신경을 썼음이 곳곳에 보인다. 상류 계층과 부유한 계층 사람들은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가발로 멋을 내고 리본 장식까지 하고 있다. 심지어 화장 숟가락까지 있는데 그 숟가락 손잡이에 알록달록 무늬가 새겨진 오리가 한 마리 붙어 있다. “어허, 이집트 오리한테 물리면 안 되는데…” 프랑스의 고고학자 ‘마리에트’의 말이 생각나는지라,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는 요리 조리 화장 숟가락을 뜯어보았다.

수영을 하는 여인이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오리 모양을 한 화장 숟가락은 얼굴이나 몸에 바르는 분가루나 크림을 덜어 담던 것이었단다. 멋 내기에 분주한 나라는 항상 악가무(樂歌舞)도 그만한지라. 멋쟁이들의 나라 한국의 K팝이 세계를 휩쓰는 것도 알고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 숟가락까지 있었던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음악은 어땠을까.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음악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악이 군사적 용도로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노동이나 축제 때에는 상징적 의미까지 곁들여져 흥을 돋우거나 영의 세계를 환기시키는 등 주술적인 역할까지 했다. 오늘날 시시때때로 유행이 변하는 음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 역할이 대단했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악기나 소리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 악사를 조각하거나 묘사한 그림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음악의 면면을 상상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상의 실마리가 되는 하나의 그림을 소개하자면, 어느 이름 없는 화가가 심심풀이로 그린 ‘류트를 타는 나부’를 들 수 있다. 도자기나 유리 파편과 같은 도편(陶片)에 그려진 이 그림은 어느 예술가가 혼자 그려본 지극히 사사로운 것이다. 유리병이나 도기 등이 깨져서 생긴 파편인 도편은, 파피루스보다 비용이 저렴했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것으로 셈을 하거나, 인명 리스트, 학교 공책, 도화지 등으로 썼다. 아무튼 이 그림은 이집트 미술에서 흔히 나타나는 정면성의 원리를 벗어나 높은 곳에서 바라 본 것으로 여인의 가슴이 완전히 드러나 있는 야한 그림이다.

피라미드 작업에 불려온 모 화가가 심심풀이 삼아 여인네를 넌지시 훔쳐보는 심사로 긁적여 본 것이라는데, 이러한 도편 그림들은 신왕국 당시 ‘왕의 계곡’ 공사를 담당했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데이르 알 메디나’ 인근에서 종종 출토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미루어 볼 때 당시 그 곳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거주했으리라고 귀띔한다.

예술가들은 공공건물 장식에 동원될 때에는 자신들의 상상력이나 개인적 취향을 버리고 일정한 규범에 따라 작업했다. 그러나 은근 슬쩍 그려본 이 그림은 피라미드 속에서 보이는 정면배치와 직선적인 표현의 그림들과 달리 여인네의 자태가 자연스러우면서도 대담하기 그지없다. 대개의 사람들이 이 그림에서 한 가운데 풍만하게 드리운 여인네의 가슴을 주목한다는데 필자에게는 그 아래에 있는 붉은 칠을 한 류트로 눈길이 가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격일게다. 왼쪽 팔로 머리를 받친 사이로 칠흑 같은 검은 머리가 드리우고 붉은 빛깔의 류트 위에 맨살의 여인이 오른손을 얹고 있으니 나체로 류트를 타고 있단 말인가. 에구머니나. 그 화공, 참 음탕한(?) 상상을 하였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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