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몰락…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멈춤’

삶과 인간의 뒷편을 파헤친다다는 평 받아

  • 입력 2012.03.19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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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임시 동거인. 해정은 자신의 가족을 그렇게 정의한다. 이전 조건이 어땠는지 몰라도 최근 조건은 기간제, 앞으로 약 2년이다. 때에 따라서 3년·4년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해정에게 달렸다. -큰애가 대학만 가면 끝이야.- 엄마는 틈만 나면 그렇게 말했다.”
삶과 인간의 뒷편을 파헤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소설가 안보윤(31)씨가 새 장편 ‘우선멈춤’을 펴냈다.

성추행 상습범인 가장, 불륜과 가출을 일삼는 엄마, 원조 교제로 임신과 낙태를 경험한 딸, 학교 폭력으로 등교를 거부하는 왕따 아들. 4인의 ‘막장 가족’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습관적으로 영아를 살해 혹은 유기하는 상담 교사, 불법 낙태 시술사와 그녀의 망나니 아들 등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은 인연의 질긴 실타래 속에서 저마다 얽히고 설켜있다.
번듯한 중소기업의 사장인 아빠 ‘정현철’이 찜질방에서 고등학생 딸 ‘해정’ 또래의 여자아이들을 추행하다 인근 지구대로 끌려간 뒤 해정의 가족은 급속하게 나락으로 빠져들어 간다.
초등학생 아들 ‘해수’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그날, 그곳에 같은 반 친구 ‘용태’의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해수는 반 친구들에게 변태의 아들도 변태라며 놀림을 당하다가 아이들의 극심한 폭력을 견디다 못해 반년째 등교를 거부하고 집에서 하루 종일 DVD만 보며 지낸다.
엄마는 젊은 남자랑 바람을 피우다 아예 짐을 싸서 집을 나가 버렸다. 해정은 30대 중반의 남자 ‘박기영’과 모텔을 들락거리다 임신을 하고 박기영에게 죽지 않을 만큼 얻어터지고 나서 낙태 수술을 받는다.

소설에서 가족은 “조건부 임시 고용인”에 불과하고, 호적은 “임시 고용계약서”에 다름 아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로 인한 상처가 이들 모두를 괴물로 만든다. 소설에서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 치고 가족이란 유대감이 제대로 형성된 경우는 하나도 없다.
안씨가 공들여 서술하는 것은 ‘최후의 가족’이 아니라 ‘가족의 최후’다. 가족들의 죄와 상처는 심화되고, 가족의 불행을 최적화하며 최대화한다. 그러면서 가족의 몰락을 완성한다. 단순히 가족의 불행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괴물성까지 조망한다.

문학평론가 정영훈씨는 “안보윤이 이 잔혹하고 불쾌한 세상에 몰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거나 존재해야만 하는 어떤 미덕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며 “이 잔혹한 세계와의 대면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우리 눈앞에 놓인 세계 자체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 부재하는 것, 상실된 무엇, 상실되었으나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일 것”이라고 읽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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