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파라오를 놀려먹는 재미

  • 입력 2012.03.20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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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물이 지배하던 시절 최초의 언덕이 솟아올라 그 언덕으로부터 생명이 탄생한 것을 상징한 것이 피라미드. 그리하여 파라오의 신격을 상징했던 피라미드는 태양신 ‘레’와 동일시된 파라오를 영원의 세계로 인도하는 태양의 빛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기자’의 피라미드를 폐쇄한다는 보도가 나온 것은 무슨 일일까. 피라미드 관리를 맡은 담당국은 이날 "피라미드의 일부 보수작업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단다.

한 당국자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2011년 11월11일 기자 피라미드에서 한 종교집단이 수상한 의식을 치를 예정이라는 루머가 퍼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지 점술사들이 2011년 11월11일 11시11분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해 이래저래 불안했던 당국이 이와 같은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자의 피라미드 속까지 들여다 본 적이 있는지라 그날 자정을 넘길 때까지 행여 획기적인 기사가 뜨지 않나 은근히 기대했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별다른 뉴스가 없었으니 ‘루머는 루머’로 끝이 난 게다.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는 나일 강의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서기 7세기에 세워진 도시 이름이다. 아랍어로 ‘지자’라고 불리는 이곳은 수도 카이로와 지중해 해안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이집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 200만이 넘는 곳이다. 이곳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3개의 피라미드는 고왕국(기원전 2686~2181), 제4왕조, 케옵스, 케프렌, 미케리노스 등 3명의 파라오들이 건축한 고분이다. 피라미드 앞에는 거대한 스핑크스가 자리 잡고 있는데, 콧등이 잘려나간 그의 얼굴만 보더라도 4500년의 온갖 풍상을 견딘 세월을 한눈에 읽게 된다.
필자가 이곳을 여행한 때는 한 여름이라, 뙤약볕에 내려 쪼이는 돌무덤의 위용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세 개의 피라미드를 낙타를 타고 도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던 데다가 도굴꾼들이 만들어 놓았다는 통로를 통해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니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미로에 덜컥 겁이 났다. 어떤 이들은 피라미드 외부의 돌덩이 위를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며 몇 칸을 오르고는 그만 내려오기도 했다.

돌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저 피라미드 중 케옵스 하나를 짓는데 약 10만명의 인원이 3개월씩 교대로 20년이 걸렸다고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말했던가. 자신의 무덤을 짓고자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과 생명을 착취하는 정치가가 요즈음 세상에 있다면 전 세계에서 비난이 핵폭탄이 되어 터질 것이다. 태양력과 측량술, 천문학, 상형문자 등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일군 이집트 사람들이 어찌 민주주의는 생각을 못했을까.

북극성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곳에 지어졌고 세차(歲差)에 따라 지구와 천체(天體)의 위치 변동까지 측정할 수 있는데다가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피라미드 속 세계를 생각하니 인간들의 무모한 꿈과 욕망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대단하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죽음’에 도전하는 인간 공통의 과제와 초월적 세계를 향한 이집트인들의 충성도가 더해진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사후 세계에 대한 신비와 두려움을 피라미드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이집트인들에 비해 무한히 반복되는 윤회를 따라 가벼이 옷 갈아입듯이 내생을 향한 여정을 떠났던 인도의 성자들을 생각해 보자. “파라오씨, 요걸 몰랐지요? 에구.” 그래 이쯤에서 피라미드는 고대인들의 무매한 내생관으로 접어두자. 그렇다 치더라도 쌓은 돌의 틈새로 칼끝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지은 피라미드와 그 안의 물건들을 볼 때 당시 이집트 사람들의 솜씨와 예술성 하나는 도저히 넘볼 수 없을 것이다.

피라미드 주변에는 왕비와 왕족의 무덤인 작은 피라미드, 고급 관료들의 무덤인 마스터바, 신전과 석관을 운반하기 위한 운하와 하역 시설이 복합적인 유기체를 이루고 있다. 바로 그 앞에는 거대한 스핑크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스핑크스라는 말은 그리스어이고 이집트에서는 ‘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인 ‘아부 알홀’로 불린다. 원래는 ‘살아있는 조각상’이라는 뜻의 ‘케세판크’로 불리기도 했다하니 아마도 옛 이집트 사람들은 스핑크스를 살아있는 파라오로 여겨 숱한 예배를 올리기도 했던 듯하다.

사자의 몸에다 여인의 가슴과 얼굴을 한 그리스의 스핑크스와 달리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파라오의 얼굴을 한 것에서부터 다른 동물의 머리가 올라가 있는 것 등 다양하다. 수많은 스핑크스 중에서 기자의 스핑크스는 그 규모나 피라미드와의 관계 등을 볼 때 가장 의미 있는 스핑크스이다.

그나저나 인증 샷 하나 찍어볼까나? 워낙 커서 가까이에서 보면 형체도 파악되지 않는 스핑크스이기에 멀리 떨어져서 팔을 내밀고 입을 삐쭉하고 입맞춤 하는 폼을 잡았다. 그래도 파라오인데 세월의 원근 덕으로 폼이라도 잡아 보는 것이다. 이 분이 어떤 분인데…. 보던 사람들이 깔깔 웃는다. 그렇게 한참 난리를 피우는 사이에 저만치 석양이 드리워졌다. 지프를 타고 나오며 석양빛에 돌아본 스핑크스는 비록 생명이 없는 돌덩이지만 어찌나 외로워 보이는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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