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피라미드 속 하프류

  • 입력 2012.03.21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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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시대의 악사들은 대개 전문적인 연주자들로 그 신분은 신전에 소속돼 있었다. 신전의 의식에서는 하프·수금·시스트럼 등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됐으며 이들의 음악은 대부분 음악과 춤의 수호자인 하토르 여신을 숭배하기 위해 연주됐다. 주악도(음악을 연주하는 모습과 춤추는 모습이 그려진 벽화)들을 보면 대개 여성들이 악기를 타고 있다. 이는 기원전 1550년 경 고대 이집트에 신왕국이 성립될 당시 종교생활 전반에 걸쳐 여악사들이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의 궁중 악사들이 남자로만 이뤄진 것과 대조적이다.

악사들은 타악기부터 현악기까지 매우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는데 그 중 가장 화려하고도 다양한 것이 하프 류 악기다. 하프 류 악기들이 피라미드 속 벽화에 유독 많이 보이는 것은 이집트 왕실을 상징하는 악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집트의 기념물 가게에 가면 파피루스 위에 하프를 타는 주악도를 그린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중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25㎞ 떨어진 나일강변의 제 5·6 왕조 시대의 피라미드인 사카라 석실분묘에서는 아내를 위해 하프를 연주하는 제 6왕조의 귀족 메레루카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하프류 악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000년 경 원숭이가 타고 있는 하프다. 일명 ‘원숭이 석상’이라 불리는 이 조각은 얼핏 보면 원숭이가 절구통을 들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의 하프들은 C자형 모양이었으나 후대로 가면서 L자형으로 바뀌었다. 이는 C자형보다 L자형이 보다 많은 줄을 걸 수 있고 악기의 크기도 확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L자형 악기가 생긴 이후 C자형 악기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C자형은 그 나름대로의 음색과 편이성이 있기 때문에 둘은 함께 하프 음악의 다양한 면모를 유지했다.

악기의 구조적인 점에서 C자형과 L자형이 비교되지만 모양새와 용도에서는 더욱 다양성을 보인다. 어떤 것은 마치 엿장수가 엿 판을 메고 가듯이 몸에 걸고서 현을 두드리는데 악기의 생김새를 보면 한국의 양금과도 흡사하다. 룩소르에 있는 왕들의 계곡에서는 다섯 여인이 악기를 타고 있는 그림이 발견됐다. 그 모양새를 보면 서서 타는 길다란 하프, 손에 들고 타는 기타 크기의 하프도 보인다. 테베에 있는 안호르카오우 무덤에는 오늘날 서양 사람들이 타는 하프와 유사한 것도 있고 람세스 3세의 무덤에는 콘트라베이스 같이 서서 타는 것도 보인다.

가지각색의 하프들 중 새의 모양을 한 하프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줄을 멘 하프 틀이 새의 몸체 모양으로, 깃털과 머리 부분에 걸쳐 줄을 메었다. 이러한 하프 틀은 고급 예술품을 방불케 한다. 고대 인도에는 천상의 소리를 내는 새를 ‘가릉빙가’라고 했는데 이것이 불교에 들어와서 극락조가 됐다. 중국 사람들은 이 새를 묘음조(妙音鳥) 혹은 미음조(美音鳥)라고 불렀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사찰의 벽화나 석탑에 이를 그리거나 새겨 넣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을 일러 ‘가릉빙가와 같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옛 사람들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서 음악적인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하프류 음악이 가장 화려했던 시대는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으로, 특히 람세스 3세의 무덤에서 많은 주악도가 발견됐다. 기원전 1150년 경 제위한 람세스 3세의 묘실 안에 있던 주악도에서 발견된 하프들을 보면, 몇 개의 줄에서부터 10개, 13개, 심지어 40여개의 현에 이르는 하프들까지 다양하다. 가장 큰 하프는 높이가 2m는 족히 넘을 듯하다. 어떤 주악도의 양편에는 몸집이 우람한 남자가 서서 거대한 하프를 타고 있는데, 악기를 타는 모습만 봐도 우람한 소리가 들려올 듯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프는 주로 어떤 때에 쓰였을까. 가장 초기에 생긴 C자형 하프는 주로 제천의식과 같은 종교의식에 쓰였다. 서서 연주하는 크고 긴 하프는 궁중 연회음악에서 연주됐다. 연주자가 받침 위에 올라가거나 서있는 자세 혹은 악기를 받침대에 올려놓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연주하는 하프들은 주로 신께 바치는 음악에 쓰였다. L자형으로 서거나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는 오늘날 쓰이는 하프와 가장 유사한데, 이 악기는 주로 야외나 실내의 연향악에 쓰였다.
이들 하프들은 갖가지 보석과 조각으로 장식됐는데 그 모양을 보면 파라오의 머리가 붙어있거나 여신 등 여러 가지 상징물이 조각돼 있다. 악기에 어떠한 장식을 했는지는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반영하기도 하므로 이러한 분야만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하프류 악기는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해 인도, 그리스에서 다양하게 발견된다. 중앙아시아를 지나 아시아 전역으로도 퍼졌다. 한국에도 이와 같은 악기가 유입돼 ‘공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요즘은 범종이나 사찰의 벽화에 비천상의 형태로 그려진 것이 많은데 주로 천인들이 많이 타는 악기로 묘사되고 있다. 전통 악기들과 함께 연주되는 양금의 본래 이름은 ‘구라철사금’ 즉 유럽에서 들어온 철사로 된 현악기라는 뜻이다. 이를 줄여서 ‘양금’이라 하니 한국에 들어온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하프류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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