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람세스 2세의와 왕비의 음악

  • 입력 2012.03.22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집트를 여행하다 보면 어디를 가나 람세스 2세를 만나게 된다. 그의 영토 확장과 국력다지기 행보가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막강한 정치력으로 말미암아 다음대인 람세스 3세(기원전 1279~1212) 때에 문화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니, 비유하자면 조선시대 태종의 강력한 정치 기반 위에 세종대의 문화가 꽃핀 것과도 같다.

람세스 2세가 치세할 때는 인근 국가는 물론 멀리 그리스에서도 그에게 예를 올리러 올 정도로 국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바로 그 교역의 통로에 신전을 세워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아부심벨’이다. 수 천 년의 세월 속에 잊혀가던 이 신전은 1817년 이탈리아 탐험가에 의해 발굴되었고, 당시 이들을 가이드한 현지 소년의 이름인 ‘아부심벨’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지금은 이 신전이 이집트 남부지역 아스완에서 약 280㎞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애초에는 아프리카와 수단을 오가는 국경 지역에 있었다. 나일강의 절벽에 거대한 바위산을 파서 지은 아부심벨 신전이 어찌해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사암을 파서 만든 신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 산을 오려서 옮겼단 말인데, 대체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이집트는 사막지대이므로 도로변의 가로수나 들판의 풀잎 하나도 나일강으로부터 물줄기를 대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나일강은 생명줄 그 자체다. 이렇도록 소중한 나일강이지만 상류로부터 모여오는 강물이 범람하는 일 또한 엄청난 위협이었다. ‘아부심벨’ 사원 일대의 나일강이 범람을 계속하자 이집트 당국은 이곳에 댐을 건설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공사로 수단과의 국경지대까지 물이 차게 됐으니 ‘아부심벨’과 인근의 유적들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프랑스의 여류학자 크리스틴느 데로수 노블쿠르가 팔을 걷어 붙였다. 그녀는 온 세계 문화 관계자들에게 호소문을 보내 ‘아부심벨’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끌어내어 이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신전의 벽과 기둥, 그리고 거기에 그려진 그림과 조각들 모두 중요한 것이었다. 이를 온전히 유지한 채 옮기기 위해 1963년부터 약 4년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총 동원했고 20톤 정도의 무게로 등분해 배에 실어 와서 원형 그대로 붙여 놨다. 상상이 가지 않지만 당시 공사 현장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믿기지 않는 일들이 현실로 다가온다.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를 위한 대신전과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이뤄져 있다. 고대 지진으로 인해 훼손된 입구 왼쪽의 머리와 토르소 외에는 대부분이 마치 본래 이 자리에 있었던 듯이 완벽하게 조립되었으니 20세기의 과학 기술도 피라미드 못지않게 경이롭다.
입구에는 높이 20m의 거대한 네 개의 좌상이 람세스 2세의 권위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빽빽하게 그려진 벽화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수 천 년을 견뎌온 벽과 기둥이라 퇴색되거나 부식된 그림들인데도 세세한 묘사와 색체들이 당시의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해 준다. 이를 복원한 영상을 보면 벽면과 기둥, 천정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그림과 조각들이 마치 보석 상자 속을 걷는 듯하다.

태양신을 숭배해 신전의 구조를 동쪽으로 정확하게 배치했으므로 1년에 두 번씩 햇빛이 바위 동굴 안으로 비춰들었다니 자신의 권력과 신성을 과시하고자 했던 람세스 2세의 원대한 포부와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비해 이토록 놀라운 유적을 아무 생각 없이 수몰시키려 했던 오늘날의 이집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혈통을 이어 받은 사람들인지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룩소르에 있는 ‘왕비의 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람세스 2세의 비(妃)인 네페르타리의 무덤이다. 아부심벨에 있는 네페르타리 신전 또한 여성스러운 섬세함과 정교함이 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나저나 람세스 2세의 유적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그의 비 네페르타리가 함께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녀는 파라오의 마음을 이토록 붙들어 맬 수 있었을까.

람세스 2세는 영토를 확장하고 국력을 다지기 위해 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가 전장에 나갈 때면 여인들은 대개 궁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네페르타리 왕비는 항상 파라오와 함께 전장을 누볐다. 적의 화살이 날아드는 곳에서도 왕의 곁을 지키며 함께 했고, 지친 왕을 위해 전쟁 막사에서 악기를 타며 왕의 피곤을 달랬다. 당태종의 마음을 빼앗은 양귀비가 음악과 미색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면 네페르타리는 음악과 헌신으로 파라오와 나라를 지켰으니 그녀를 위한 신전이며 호화로운 무덤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람세스 2세와 떨어질 줄 몰랐던 그녀였으니 ‘아부심벨’에 그녀를 위한 신전이 없으면 이상한 일. 소신전은 하토르 여신에게 예배를 올리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본래의 이름은 하토르 신전이었고, 바로 여기에 네페르타리가 하토르 여신을 경배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페테르타리 왕비가 신에게 ‘누’를 봉헌하고 있고, 곁에는 타악기인 시스트럼이 보이는 이 그림을 보면 3200년 전의 먼 과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