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이집트 사막 베두인들의 노래

  • 입력 2012.03.26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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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시절 한 때는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게 홀딱 빠졌던 적이 있다. 그의 소설 ‘야간비행’을 읽고는 ‘비행’에 대한 동경을 얼마나 했던지,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 조나단’과 그의 자전적 소설 ‘소울메이트’에 이르기까지 조종사 출신 작가들을 모조리 섭렵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땅위에 발을 딛지 않고 산 것 같다. 그나저나 생텍쥐베리가 불시착한 곳이 바로 카이로 인근의 사막이라니 새가 방앗간을 지나치겠는가.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대 여섯 시간을 달렸을까? 집, 산과 나무, 들판과 같은 우리네 일상에 놓여 있던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위로는 파란 하늘, 사방으로는 오로지 모래 언덕 뿐이니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을 달리다 보니 이제는 버스가 갈 수 있는 길도 끊겨 버렸다. 모래 위를 달릴 수 있는 지프차를 갈아타고 사막을 달리니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빙빙 둘러매었다. 모래 바람으로 머리 밑에 모래가 덕지덕지 앉을 터이니 머리 수건은 필수. 이러한 생활환경이 패션 트렌드가 되어 ‘히잡’이 되고 ‘터번’이 된 것이다.

모래알이 바람에 끊임없이 날리니 동쪽에 있던 언덕이 며칠 후면 서쪽으로 옮아가 있다. 믿을 것이라고는 하늘의 별자리 뿐. 예수님이 태어날 때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찾아 왔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모래알이 온통 검게 그을려 있는 블랙사막에 이르렀다. 수 천 년(?)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재가 온 사막을 덮고 있었다. 거기서 또 얼마나 달렸을까? 생텍쥐베리가 불시착한 그 사막이 여기라며 손짓한다. 상상으로만 그리던 사막과 소설 속에서의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지자 전율이 느껴졌다. 잠시 그곳에 멈춰서 생텍쥐베리의 비행을 그려 보았다. 까만 어둠 속에 하나의 비행체가 윙~하니 내려앉아 스카프를 휙 날리며 내려선 어린 왕자와 손이라도 잡아 보았으면 좋으련만. 동행하는 여행객들의 부산함이 이를 허락지 않는다.
그리곤 또 얼마나 달렸을까? 클레오파트라의 살결보다 더 보드라운 모래 언덕이 끝없이 펼쳐졌다. 맨발로 걸으면 무좀이 없어진다고 어떤 이들은 신발을 벗고 저벅 저벅 걷더니 이내 “앗 뜨거워!”라며 호들갑을 떤다. 모래 언덕 여기저기서 구르고 소리 지르는 모습들이 마치 눈이 쌓인 들판을 뛰어 다니는 강아지들 같다.

다시금 지프차를 타고 달렸다. 한낮의 태양이 석양으로 질 무렵 다다른 곳은 화이트사막. 여우 모양, 버섯 모양, 망치모양 등 마치 솜씨 좋은 조각가가 다듬어 놓은 듯 하얀 조각품들이 사막 가득 세워져 있다. 바람에 의해 자연적으로 조각상이 생긴 이곳은 수 만 년 전 바다가 솟아올라 굳은 것이란다. 갖가지 모양의 하얀 조각상들에 탄성을 지르는 사이, 하나 둘 별들이 뜨기 시작했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이 가까이 있는 별들이 마치 명동 거리에 몰려나온 사람들 마냥 빼곡하다.

지프차들을 빙 둘러 세우고 몇 개의 양탄자를 펴니 어느새 사막은 아늑한 부엌이 되고 침실이 됐다. 낮에 열을 받은 모래 바닥이 온돌방처럼 따뜻하거니와 보드라운 모래의 촉감이 솜이불 마냥 다정하다. 사막이 이렇게 포근하고 아늑하다니, 그제야 정착시키기 위해 집을 지어줘도 거부하고 사막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유목민들이 이해가 됐다.

불을 지펴서 고기와 빵을 구우니 저만치 사막 여우가 작은 같은 눈을 깜빡이며 다가온다. 보아하니 이미 관광객들의 음식을 받아먹고 사는데 익숙해졌다. 밥상 곁으로 다가 오기는 하는데 행여 잡힐세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기저기서 던져주는 몇 개의 먹을거리를 물고는 총총히 사라지는데, 연달아서 몇 마리의 여우들이 계속 나타난다. 그렇게 여우들과 먹이놀이를 하는 사이 밤이 금세 깊어졌다.

바로 그 즈음, 사막 가이드를 맡은 원주민들이 잠베를 허리춤에 차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집트 베두인족인 이들은 한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밤을 샌단다. 북통을 한쪽 옆구리에 끼고서 양손 바닥으로 북 가락을 넣으며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들어보니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무캄’과도 많이 닮았다. 하기는 아라비아로부터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 신장지역이라 어쩌면 이들이 원조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들의 노래가 처음에는 다소 처량하듯 느리더니 갈수록 빨라져갔다. 인도의 라가, 대만과 중국의 염불의식이 그랬고, 한국의 ‘영산회상’ ‘산조’의 틀이 그런데다 이집트 수피춤과 이곳 사막 베두인들의 노래도 점차 빨라지는 틀을 지니고 있으니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서 연주자와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나저나 밤새도록 부르는 그 노래 내용이 무엇이오?”
서툰 영어와 손짓 발짓으로 설명하는 내용을 대강 간추려 보니 성경에서 “아브라함이 누구를 낳고, 누구를 낳고”와 같은 내용에, 어떤 왕이 전쟁에서 적을 무찌르는 ‘적벽가’류 에다가, 춘향과 이도령이 잘 먹고 잘살았다는 것과 유사한 이야기들이었다.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행상을 다닐 때면 사막에서 밤을 새며 이런 노래를 한다는데 관광객들에게는 자장가로 느껴지는지 어느새 다들 잠들어 버렸다.

세상의 불빛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는 까만 사막에 모래 담요를 깔고 별을 헤며 지낸 사막에서의 하룻밤. 지금껏 많은 여행지를 다녀봤지만 가장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여행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였느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사막에서의 하룻밤”이라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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