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오래된 미래’ 티베트 라다크, 신 오른 사랑노래여

  • 입력 2012.03.28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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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인류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오래된 미래’가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된 지도 수십년이다. 매년 여름이면 라다크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진 수많은 학자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책에서 호지여사는 “히말라야에 가로막힌 라다크는 오랜 세월 동안 거의 문명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족적인 생존을 영위하며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아왔는데 근대적 개발로 인해 오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차가 다니지 못하는 라다크 골짜기를 나귀를 타고 다니며 20여년간 의료 봉사를 해오고 있는 한국 청전 스님의 얘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신체의 일부가 썩어가도 항생제 한 알을 구할 수 없고, 영양실조로 인하여 한국의 삐콤이 구사일생의 보약이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라다크에 대한 온갖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대체 왜 사람들이 ‘라다크, 라다크’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인도 속의 작은 티베트, 라다크를 더 이상 고립과 신비의 땅이 될 수 없도록 만든 데에는 마날리에서 히말라야 산을 넘어 라다크로 가는 도로가 뚫린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도로는 ‘차가 쌩쌩 달릴 수 있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눈이 녹아내리는 계곡의 낙석 때문에 수시로 도로를 복구해가며 겨우 20~40㎞로 덜컹대는 지프를 타고 가다보면 마치 트랙터를 탄 기분이 든다.
꼬박 2박3일이 걸리는 여정 중 델리에서 마날리로 가는 첫째날은 갖가지 인도의 생활 풍속을 만날 수 있어 신기하고도 즐겁다. 둘째날은 서서히 고산증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인도의 알프스라고 불리우는 키롱 산자락이 주는 상쾌함은 도시의 더러움을 벗어난 오아시스와도 같다. 이 곳에서는 히마라야 설산의 눈이 녹아 폭포와 같은 물살을 일으키는 계곡에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라다크에 이르는 셋째날은 이 코스의 절정이다. 마치 화성에라도 온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풀 한포기 없는 첩첩산중을 대여섯 시간 달리고 나면,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설산을 오르게 된다. 그즈음 곳곳에서 스키와 행글라이더, 말을 타고 있는 관광객들을 보노라면 이 산의 주인이 누구인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산고개의 정상을 넘어 사막과 들녘을 지나 어슴프레 석양이 밀려 올 무렵이면 차창 밖으로 ‘라다크’라는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라다크에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레’시내까지는 몇 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이 여정을 청전 스님은 “전생에 수없는 복을 지어야만 체험할 수 있는 절경”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히말라야 산을 넘으며 접하게 되는 장대하고도 변화무쌍한 체험은 고산증을 감내하며 며칠간 덜컹대는 차에서 견뎌낼 수 있는 체력, 이동하는 데만 며칠이 소요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델리에서 라다크로 비행기를 타고 금방 날아갈 수도 있지만 히말라야 산을 넘어서 라다크에 도달하는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다.
하룻밤을 자고나서 먼지로 범벅이 된 옷가지들을 빨아 널면 유난히 맑은 라다크의 햇살과 바람이 그간의 여독을 씻어준다. 거리를 나서면 서구의 젊은이들이 좌탁이 놓인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치잇, 저런건 우리동네 싸구려 식당인데….’ 콧방귀를 뀌듯이 훔쳐보며 거리를 둘러보면 라다크스러운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물건을 사라고 손짓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인도인이거나 하얀 모자를 쓴 무슬림이고, 티베탄은 주로 난전에서 판다.

버스를 타면 기사들이 음악테이프를 커다랗게 틀어 놓는데, 그 기사가 어느 민족인지를 가늠하려면 음악을 유심히 들어 보면 된다. 따네와 응아(북) 혹은 일반 타악기로 반주하는 노래를 튼다면 티베탄, 시타르와 따블라 소리가 들리면 인디언이라고 생각하면 십중팔구는 맞다. 티베트 전통 현악기인 따네<사진>는 기타와 같이 옆으로 둘러 메고 타는데, 유랑극단의 예인들이 많이 타므로 티베트에서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응아는 손잡이가 있는 북인데, 불교의식이나 전통 창극을 할 때 춤과 노래의 반주에도 쓰인다.

티베트의 따네와 비교되는 인도의 시타르는 현의 울림과 테크닉이 한층 현란하다. 바닥에 세워놓고 앉아서 연주하는 이 악기는 공명 통이 커서 유랑악사가 만만하게 들고 다닐 수는 없다. 따블라는 두 개의 북통이 한 쌍을 이루는 타악기인데, 한국 전통음악에서의 장구와 같이 대부분의 음악에 반주를 맡는다. ‘라가’를 반주하는 따블라 연주자의 손끝을 보면 ‘신이 오르지 않고는 어찌 저렇게 두드릴 수 있을까’하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서로 다른 티베트 계통과 인도 계통의 라다크 음악이지만 이 가운데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그들 민족 고유의 창법과 민속음악이 곧 대중음악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남녀가 주고받는 노래가 많다는 것이다. 간드러진 여자의 소리를 구성지게 받는 남자의 노래는 필시 처녀총각의 사랑가일레라. 그러고 보면 세상 어느 곳이건 남녀간의 사랑노래를 빼면 팥고물 없는 찐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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