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라다크의 해미스 축제

  • 입력 2012.03.30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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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키롱에서 라다크로 가는 버스를 타고 스무 시간 가까이 달리다 보면 히말라야 특유의 풍경들에 반짝이던 호기심들은 서서히 파김치가 돼간다. 하지만 함께 하는 승객들은 한 식구가 돼간다.

외지에 다녀오는 라다키(라다크 주민)들, 여행길에서 만나 커플이 됐다는 일본 여자와 기타를 멘 프랑스 청년, 사업을 하다가 몇 년째 인도 여행 중인 이탈리아 아저씨, 30년 전부터 여름마다 이 산을 넘어 라다크로 와서 휴양을 즐긴다는 독일 중년부부가 있다. 그런가 하면 버스 맨 뒷자리에서 차가 덜컹댈 때마다 뜀틀 뛰는 아이들처럼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던 캐나다 대학생들은 더없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어느 산자락에서는 아픈 양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는 할아버지가 탔는데 그 모습이 히말라야 산속의 정경을 더욱 그럴 듯하게 했다. 힘없이 할아버지 품에 안긴 아기양이 여행객에게는 애처럽고도 귀여운지라 다들 쓰다듬고 만져보고 난리다. ‘베이비!’ ‘보베리나~’ ‘우루루~ 까꿍’하며 제 각기 자기나라 말로 아기 어르는 소리에 양이 더 큰 몸살이 날 것 같았다.
라다크에는 여름 휴양을 위해 찾아드는 유럽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모여드는 데는 찜통 속 같은 인도의 여름을 식혀 줄 히말라야 고지대 특유의 상쾌하고 청명한 날씨도 있지만 ‘인도 속의 작은 티베트’라는 라다크 특유의 전통문화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이 광활한 지역에 티베트 문화가 정착하게 된 것은 10세기께 티베트 제국의 일부가 건너와서 ‘레(Leh)’ 왕국을 세우면서부터다. 약 900년에 걸쳐 통치한 레 왕궁은 이제 관광객들의 볼거리로만 남아있다.

레 시내에는 왕궁을 비롯해 남갈체모 곰파, 한국 사찰인 대청보사, 일본 사찰 산티 스투파와 더불어 동양의 정신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명상센터가 있다. 외곽으로 나가면 골짜기마다 티베트 사원이 없는 곳이 없다. 이들 사원은 각각 나름의 미를 지닌 사원 건축과 오래된 벽화와 조각품들을 보유하고 있어 라다크 일대가 티베트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이다. 중국정부의 통제로 원활한 승풍(僧風)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티베트 본토와 달리, 어린 동자승부터 노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수행자들이 있는 라다크는 살아있는 티베트 불교를 체험하기에 좋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원인 해미스곰파는 레 시내로부터 서남쪽으로 43㎞ 지점 인더스 강의 왼편에 위치해 있다. 어원적으로 ‘조용한 곳’이라는 뜻을 지닌 곰파(monastery)에는 반드시 수행승단이 있다. 그러므로 라사의 조캉사원(temple)과 같이 관리 승려와 건물만 있는 경우는 곰파라고 하지 않는다. 1730년 무렵 이곳에 걀스라 린포체가 주변 일대를 중흥한 이후에 승려들이 점차 늘어나게 됐다. 이 무렵 인더스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쳄레곰파와 함께 연중의례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미스 축제’이다.

이 축제를 티베트 사람들은 참(cham) 혹은 체추(tse-chu)라고 부른다. ‘참’이란 티베트어로 ‘춤추다’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는데, 실제로 이 의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춤으로 진행된다. 이 축제는 본래 섣달 그뭄에 시작해 악귀를 쫓아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으로 행해져 왔다. 그러나 라다크에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히말라야 산맥의 눈으로 인해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파드마삼바바의 탄생일인 5월 10일(티베트력·한국의 음력과 거의 일치)에 행해지게 됐다. 그리하여 요즈음은 전 세계로부터 사진작가, 방송 리포터, 일반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인파가 모여든다.

참의식은 한국의 불교의례인 영산재와 닮은 점이 많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가 영산재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는데, 이는 의례 속에 오래된 전통 악가무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참의식도 티베트의 전통 악가무의 보고라고 할 만큼 춤, 노래, 연주, 연극에 이르기까지 종합 예술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지배로 급속히 쇠퇴해 가고 있는 티베트 전통문화의 입지와 현대문명이 급속히 밀려오고 있는 라다크의 변화를 볼 때 참의식의 원형 보존은 시급한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티베트의 참의식도 하루 속히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다.

무승(舞僧)들의 화려한 의상과 수십 가지에 이르는 탈과 기괴한 분장, 춤을 반주하는 노래와 악기들은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같은 불교문화권인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런 모습이 티베트에만 있는 것은 티베트 토속 종교인 뵌교에서 행하던 의식과 민간의 동물숭배 사상이 불교로 습합됐기 때문이다.

재미나는 것은 이들의 모습에서 한국 사원의 사천왕이나 탱화 속의 악귀들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티베트와 한국의 문화에는 닮은 점이 많은데 이는 고려시대에 원나라를 통해서 티베트가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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