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이제는 알고보자 티베트 라마댄싱

  • 입력 2012.04.02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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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신년의례,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의 탄생일인 5월 10일(음력) 혹은 매월 음력 10일 무렵에 하는 참의식과 라마댄싱은 티베트 전역을 비롯해 중국의 칭하이(靑海) 투얼스(), 깐수성 샤허(夏河)의 라브랑스(拉卜楞寺), 인도 다즐링과 따시종, 라다크, 인접국가인 네팔 부탄 등 티베트 사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서방세계에 불교 붐이 일면서 라마댄싱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이들은 유니크한 정경을 사진에 담기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그 내용을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승려들의 춤사위는 느리고 담담해 얼핏 봐서는 재미가 없어 대충 보고 자리를 뜨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라마댄싱에는 티베트 밀교의 심오한 비의들이 응축돼 있어 알면 알수록 심오한 뜻이 있다.
티베트 노승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승려들이 법열(法悅)에 취해 밤새도록 춤을 추었다고 한다. 정중동의 묘미를 지니고 있는 승려들의 춤은 세속의 그 어떤 춤에도 비할 수 없는 독특한 멋이 있다. 춤사위를 따라 도는 옷자락 사이로 힘없이 툭 늘어뜨리는 손짓, 무심한 듯 내려놓는 발디딤은 아집(我執)을 털어낸 수행자의 자태가 아니면 흉내 낼 수 없는 무아의 몸짓인 것이다. 이제는 이들 춤과 의례에 어떤 의미들이 있는지 라다크의 해미스 축제를 살펴보자.

오전 10시 무렵 두 명의 악사가 마당에 나와 둥첸(대형 나팔)을 불며 악사들을 초대한다. 나팔소리를 듣고 두 사람의 승려가 향을 피운 향합을 들고 등장한다. 그 뒤를 따라 걀링과 둥첸·롤모(자바라)·응아(북)를 든 악사가 마당으로 나와 연주를 하면 해미스곰파의 수호 성인(聖人)을 그린 대형 탕가를 펼친다.
이어서 검은 모자를 쓴 승려들이 도량을 정화(結界)하는 샤낙춤을 춘다. ‘샤낙’이라는 말은 티베트어로 ‘검은 모자’라는 뜻이다. 이 춤은 랑모라는 사람이 불교를 탄압하는 왕을 죽이기 위해 검은 모자를 쓰고 어둠에 숨어서 활을 쏜 데서 비롯됐다. 훗날 랑모는 불법 수호신으로 승화됐는데, 샤낙춤이 빠지면 참 의식이 아니라고 할 정도다.

다음은 동(銅)으로 만든 가면을 쓴 16명의 무승이 등장해 ‘옴 아 훔 바즈라’라는 진언을 노래하는 범패에 맞춰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춤을 춘다. 이어 이 의식에서 가장 장엄한 순서인 구루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파드마삼바바를 비롯해 역대로 큰 스승들로 분장한 구루와 수행원들이 등장하면 앉아서 반주하던 악승(樂僧)들도 일어서서 경의를 표한다. 구루들이 몇 차례 마당을 돌고나면 파드마바즈라의 춤을 시작으로 해 여덟 구루들의 독무(獨舞)가 차례로 이어진다.

오후부터는 동물과 여러 가지 형태의 탈을 쓴 호법 영웅들의 춤을 춘다. 이들은 모두 양손에 도구를 들고 춤추는데 이것은 모두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영웅들의 춤 중에서 ‘얍’과 ‘염’(아버지와 어머니)의 춤이 있다. 어머니를 상징하는 염은 오른손에 심장을 상징하는 의물, 왼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불자는 본래 인도에서 고승들이 먼지를 쓸어 낼 때 벌레들이 다치지 않도록 부드러운 털로 만든 먼지털이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어머니인 염은 자비를 상징하는 도구를 들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날도 같은 시간에 탕가를 내걸며 샤낙춤으로 정화의식을 한다. 그러고 나면 모든 승려들이 법당으로 들어가서 호법스승인 걀포에게 불공을 올린다. 이 의식은 주로 경전과 진언을 합송(合誦)하는데 린포체가 금강령(작은 종)과 금강저를 들고 의례를 주재하면 각 단락마다 악승들이 나팔과 자바라를 불기도 한다. 린포체가 하는 동작은 달라이라마가 유럽 각지에서 시범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신비롭고도 성스러운 모습에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하기도 했다.

약 2시간에 이르는 예불이 끝나고 나면 창자로 만든 밧줄, 창과 칼 그리고 화살촉을 들고 악귀를 쫓는 춤, 갈고리와 밧줄을 들고 방울을 흔들며 추는 수문장(sGoma)들 춤, 흰 의상에 노란 치마를 입고 양쪽에 색동 장식을 한 해골탈을 쓴 묘지기 춤을 출 때 땅바닥에 악령을 상징하는 붉은 흙더미를 깨어 부수기도 한다. 이들이 흰 횟가루를 뿌리며 관중들을 악령인양 잡아들이는 시늉을 하면 관중들이 함께 장난을 치기도 하며 즐거워하는데 그 모습이 한국의 마당놀이와도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승려와 그의 제자들인 동자승들이 춤출 무렵 석양이 지고 탕가를 거두면서 이틀간의 축제가 끝난다.
종일 맨바닥에서 춤추는 무승들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한 노인에게 물었다. 이 춤이 뭐가 그렇게 좋느냐고…. 그랬더니 교통사고도 면하게 해주고, 총이나 칼의 위험도 피하게 해주고, 모든 좋지 않은 일들도 없애 준단다. 춤추는 승려들 못지않게 이를 보기 위해 라다크의 골짜기에서 모처럼 성장(盛裝)을 하고 모여든 라다키들의 가지각색 전통 복장과 그들로 인한 이국적인 축제 분위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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