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새콤달콤한 인도 영화음악

  • 입력 2012.04.03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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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치 쿠치 호타 해.’ 인도의 라다크에서 버스를 탈 때마다 들었던 남녀가 주고받는 노래는 티베트 본토에서는 그다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유행가는 사실 인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OST 양식이다. 인도 사람들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민족은 세계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국민의 반 이상이 거지가 아닐까 싶은 이 나라 사람들이 영화 보기에 쏟아 붓는 돈을 보면 탕진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인도 영화를 보면 이야기를 하려고 만든 영화인지, 뮤직 비디오를 만들려고 이야기를 붙여 넣은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춤과 노래가 많다. 그 노래와 춤들은 대개 남녀가 주고받는 것 일색인데 라다크에서 듣던 티베트 처녀 총각의 사랑노래는 알고 보면 인도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남녀가 간드러지게 주고받는 영화 속 노래들은 인도 신화 속의 신들과 사원에 새겨져 있는 남녀 쌍신상의 모습과도 닮았다. 아시아 각지의 불교사원과 달리 티베트 사원 벽화에는 남녀 교합의 그림이 많다. 어떻게 신성한 사원에 이토록 에로틱한 그림들을 그렸을까.
그것은 티베트에 인도의 후기 불교, 즉 힌두적인 요소가 섞인 밀교가 들어 왔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델리, 뭄바이, 바라나시 그 어디를 가도 들려오는 유행가가 있었다. 귀엽고도 사랑스런 여자의 목소리와 매력적인 남자가 주고받는 노래 ‘쿠치 쿠치 호타해.’ 하도 많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다녔다. 마력처럼 따라하게 되는 ‘쿠치 쿠치 호타해.’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사랑스런 느낌이 물씬 나서 인도말로 ‘사랑해’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느낌, 아니 은연중 그렇게 믿어 버린 ‘쿠치 쿠치 호타해’였다.

뭄바이에서 시타르를 배우고 있는 친구를 만나니 그가 연주해 주는 곡도 또한 ‘쿠치 쿠치 호타해’였다. “쿠 쿠쿠…치 호타해, 그게 뭔말이냐?”고 물었더니 “무언가 일어날 것 같다” 뭐 그런 뜻이란다. ‘사랑해’라는 말일 줄 알았는데 뭔가 기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스릴러적 제목이 뜻밖이었다.
여행하던 그 당시에는 이 영화가 이미 종영된 시기였으므로 영화를 보지 못한 채 돌아오는 길에 카세트 테이프를 사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도에서는 CD 보급이 일반화 되어있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특정한 곡만 반복 듣기를 할 수는 없던 시절이었다. 카세트를 틀어 놓으면 이내 그 노래가 끝나버려서 되감기를 수십 번 하다가 급기야는 공테이프에다가 ‘쿠치 쿠치 호타해’만 앞뒤 가득 녹음해서 몇 달을 주야장창 듣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그 노래를 해 보라고 하면 끝까지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노래를 잊지 못하는 한 그 노래가 나오는 영화 장면이 어땠을지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현대 문명과 정보의 힘을 찬양할 일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쿠치 쿠치 호타해’를 다운받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랬다. 대학시절에 두 사람의 여자 A, B와 한사람의 남자 C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B와 C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A도 B를 사랑하고 있었으므로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대학 졸업도 하지 않은 채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B는 떠나간 친구를 그리워하며 태어난 딸에게 A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다. 불행하게도 B여자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어 딸에게 편지를 남겼다. A를 찾아 아빠와 맺어 주라는 내용이었다. 딸이 8살이 되어 엄마의 편지를 읽고 A를 찾았으나 약혼자가 있었고, 결혼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딸의 기지로 우여곡절 끝에 A와 C의 첫사랑이 이루어져 A를 새엄마로 맞이하게 되는 줄거리였다.
이야기가 이러하다 보니 아이들 중에서도 이 영화를 안 보면 간첩일 정도였고, 온 국민이 다 보았다는 것은 물론이요,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본 사람도 부지기수란다.

알고 보니 ‘쿠치 쿠치 호타해’ 노래는 남녀 주인공들이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며 주고받는 노래였다. 뜻도 모르고 이 노래가 “아이 러브 유”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에 쾌재를 불렀다. 인도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개 초호화판의 생활을 하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신 유행의 청바지를 입고 궁전과 같은 집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대학생들의 사랑은 인도사람들의 일반적인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마치 옛날 사람들이 왕자와 공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과도 같다. 영화를 통해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환상을 꿈꾸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인도에서의 영화란 현실을 잊게 하는 마약’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즈음, 다시 찾은 인도! 델리의 어느 허름한 골목을 돌아드는데 낯익은 노래가 들려온다. “음~ 쿠치 쿠치 호나해♬” 아직도 들려오는 이 노래. 이러다 쿠치 쿠치 호타해가 신화가 되어 100년 후 쯤에는 사원 벽화에 그 주인공들이 신으로 그려져 있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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