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 갠지스강 물결 따라 흐르는 ‘라가’

  • 입력 2012.04.04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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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바라나시에서, 아침이면 갠지스 강가에 나가 흙으로 빚은 일회용 컵에다 짜이(인도 홍차)를 마시고 흙잔을 강가에 던지는 재미가 쏠쏠했다. 찻잔의 바닥까지 다 마시면 밑에 깔린 흙까지 마시게 되므로 조금 남겨둔 채 바닥에 툭 던지면 스며드는 찻물과 함께 찻잔이 금방 흙으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나도 죽으면 저 흙잔과 같이 얼른 순순히 자연으로 스며들리라.’
짜이를 마시며 바라보는 갠지스강의 아침해는 왜 그렇게도 붉고도 큰지. 그 햇살에 반사되는 강물은 밤새 목욕이라도 한 듯이 푸른빛이 감돌았다. 낮이 되면 화장터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장례 행렬이 모여들었고, 시체들이 타는 모습을 보면 모든 생명체들이 흙잔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옆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 사람들, 강 건너편 바위에다 빨래를 툭툭 치고 있는 세탁소 아저씨, 사리(인도 전통 옷)를 빨아서 마를 때까지 들고 서있는 여인들을 보고 ‘빨래줄 멜 생각을 왜 못하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지기도 했다.
낡고 조그만 보트를 하나 가지고 있는 할머니는 관광객이 버린 비닐 봉투에다 물을 담아 와서 배를 씻는데, 강에서 보트까지 슬금슬금 걸어가는 사이에 물은 거의 다 새 버렸다. 주인이 그 모양이니 손님이 올리가 없어 물 길어 나르느라 해가 져버렸다.

종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강가에 석양이 드리우자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고개를 돌려 보니 힌두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악사들이다. 반수리(대금류), 쇄나이(태평소류), 따블라(두 개의 북통으로 된 타악기) 주자와 일행들과 함께 배를 하나 빌려서 노를 저었다. 해가 으스름 질 무렵 준비해 놓은 수십 개의 나뭇잎 접시에 초를 얹어서 강가에 띄우자 강물에 은하수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아득히 불빛이 사라져가자 따블라를 치는 친구가 따다닥~ 하고 몇 장단을 쳤다. 음반을 통해서도 익숙했던 소리였지만 가까이서 체감하는 소리의 질감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반수리를 부는 친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악기를 집어 들었다. 반수리가 홀로 한 소절을 쭉 불어내자 그 가락이 유유히 강물을 따라 흘렀다. 그렇게 몇 소절 더 이어지자 드디어 따블라의 장단이 가세를 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절묘한 가운데 ‘라가’의 선율과 리듬은 갈수록 빠르고 현란해졌다. 점점 몰아가는 반수리와 따블라 가락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극락에라도 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더욱 더 잦아드는 음률에 빨려 들어가 몽롱할 즈음 쇄나이의 빳빳한 쇳소리가 뇌리를 찌른다. 쇄나이의 이런 강한 음색 때문에 ‘종묘제례악에서 무공(武功)을 기리는 악곡에 쓰였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전 어른들은 태평소를 ‘쇄납’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요즈음 중국식 이름인 태평소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른 경로가 그려진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올 때, 그에 따른 문화도 함께 들어왔으므로 한국 전통음악의 성격도 인도와 연결되는 점이 많다.

한국 대부분의 전통음악이 장구로 반주하듯이 인도의 라가는 따블라라는 타악기로 반주한다. 산조를 연주하기 전에 무반주로 악기의 조율을 점검하는 ‘다스름’이 있는데, 인도에서는 이를 ‘알랍’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빨라지는 패턴,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즉흥연주를 하는 것, 다양한 장식음과 시김새를 구사하는 점도 비슷하다.

한국의 산조와 인도의 라가는 특히 닮은 점이 많은데, 그 중 차이점이라면 산조가 기악곡인데 비해 인도의 라가는 ‘음악’이라는 뜻으로도 통용될 만큼 그 범위가 넓고, 성악곡도 많다. 라가의 성악곡들은 신에게 바치는 노래로 많이 불린다. 재미난 것은 그 가사를 들어 보면 신을 찬탄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랑가이거나 신세타령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도 사람들이 영화에 쏟아 붓는 열정과 마찬가지로 라가에 대한 열정도 만만찮다. 영화가 젊은 층과 일반 대중의 대상이라면, 좀 더 연령이 높거나 진지한 성향의 사람들이 자신의 수입 대부분을 라가를 배우는데 쏟아 붓기도 한다.

한국에서 누군가가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자신의 수입 대부분으로 음악을 배운다면 ‘광신자’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신을 섬기는 것을 삶의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인도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라가에 쏟아 붓는 이들의 열정이 이방인들에게도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어떤 종단이나 종교 지도자에 의한 집단적인 행동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열정과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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