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희의 뮤직월드] 인도에 가면 ‘라가’에 취해보자

  • 입력 2012.04.05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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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라나시에서는 악사들과의 특별한 인연이 없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라가’를 감상할 수 있다. 강가에 즐비한 숙소의 골목을 돌다 보면 라가를 연주한다는 자그마한 쪽지들이 붙어있다. 저만치 소똥 냄새가 나는 퀴퀴한 골목이지만 어느 조그만 현관에 드리운 커튼 사이로 ‘따다다닥 따닥…’ 따블라 소리가 들린다면 그곳은 이미 신을 향한 예향이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커튼을 열고 들어서면 양탄자 바닥 위에 몇몇 외국인들이 모여 앉아 있다. 대부분 서구의 대학생들로 보이는데, 이들은 헐렁한 옷을 입고 벽에 기대어 앉거나 비스듬히 누워서 듣기도 한다.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연주회에 가기 위해서 정장을 챙겨야 했던 것과 달리 인도, 아니 동양에서는 그런 수고로움은 없어도 된다.

시타르나 반수리 혹은 노래이건, 라가는 주로 따블라 반주로 연주된다. 남인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의 장구 비슷한 ‘무리딩가’로 반주하기도 한다. 라가 연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조건은 지속음을 연주하는 탐부라이다. 음악이 고조되어 독주 악사가 현란한 기교를 구사할 때도 탐부라 주자는 무심한 듯 긴 지속음을 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땀부라의 지속음은 음향을 풍부하게 하는 윤활유와도 같다.
먼저 독주자가 무반주의 느린 ‘알랍’(일종의 전주곡)으로 악기의 조율과 연주 점검을 마쳤다는 신호를 보내면 ‘딸라’(장단) 반주가 들어온다. 이로써 본 악곡인 ‘아스다이’(남인도 팔라비)가 시작된다. 이때는 주로 악곡의 주요음(바디·으뜸음)을 골자로 전 음역에 걸쳐 선율이 담담하게 진행된다.

이어서 조금 더 빠르기를 당기면서 높은 음역으로 올라가 딸림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삼바디를 강조하며 잔가락이 점차 늘어난다. 이즈음부터 연주자는 자기만의 즉흥 가락을 구사하면서 기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이 부분을 ‘안타라’라고 한다.

연주자의 테크닉과 음악적 감성이 무르익어가면서 ‘산차리’ 부분으로 접어든다. 이때는 연주자의 기량과 음악적 표현이 극대화 되는데 선율은 전 음역에 걸쳐 다양한 변주를 하며 음악적 표출을 고조시킨다. 마지막으로 ‘아브호그’라는 끝부분으로 접어들어 선율과 리듬이 초절정에 다다랐을 때 마친다. 때로는 첫부분인 아스다이로 되돌아가 조용히 마치기도 한다.
인도의 라가를 이루는 음율은 서양·중국·한국의 12율보다 훨씬 미세하여 한 옥타브를 22개의 스루띠로 나눈다. 2/4·3/4·4/4 혹은 6/8인 서양의 리듬에 비해서 한국은 3·4·6·12박자 등 복잡한 장단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인도의 장단인 딸라의 한 주기는 이보다 더욱 복잡하다. 3박에서 128박에 이르는 소박이 7박자에서 16박자에 이르는 복잡한 딸라(리듬패턴)를 이루고 있어 악사들은 손마디의 금으로 박자를 세기도 한다.

라가가 연주되는 과정을 되짚어 보면 알랍(무반주 전주)→아스다이→안타라→산차리→아브호그로 진행되며 점차 빨라지는데, 이는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이어지는 한국의 산조와 매우 유사한 구조이다.

라가와 산조와 같이 느린 악곡에서 점차 몰아가는 패턴은 한국의 전통음악 중 ‘영산회상’도 마찬가지다. 중국·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는데, 아시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런 양식이 왜 생겨났을까.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몰아가는 것은 집중력을 요하는 명상수련에도 쓰인다. 고대 인도인들은 소리를 공간적 요소로 인식하였다. 우파니샤드 시대에는 성명학(聲明學)이라는 것이 있었다. 성명학의 산스크리트어인 ‘사브다비드야’의 어원을 살펴보면 ‘사브다 (sabda)’는 소리(聲), ‘비드야(vidya)’는 학문(明)을 의미한다.

즉, 소리는 공간의 진동을 통하여 우주로 퍼져가므로 소리는 범아일여의 매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소리 자체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요기들은 ‘옴’과 같은 진언으로 우주와 교감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전통 불교음악을 소묘(聲明)라고 하는데 이 또한 인도의 이러한 소리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라가의 템포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인간 삶의 모습과도 닮았고, 우주의 속성과도 일치한다. 이러한 우주적 미학에 바탕을 둔 라가이기에 사람들의 혼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 이쯤 되면 왜 인도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서 라가를 배우는지 짐작이 간다.
이제, 누구라도 인도 여행을 한다면 하루 저녁쯤은 라가를 따라 매력적인 힌두의 신도 만나보고, 신들과 함께 범아일여의 경지도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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