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치우동락(痴又同樂)과 아척비천(我瘠肥天)

  • 입력 2012.07.25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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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과 성현들의 도는 제왕과 고관대작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어리석은 민초들을 위한 길 잡이자 등불이었고 치도(治道)역시 백성을 아끼라는 벼슬아치들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정치의 계절이자 선거의 계절이다 보니 온통 말 풍년이다. 그러나 말 가지고 이룬 태평성대는 없었다. 거의가 구업(口業)을 짓는 미필적 죄악으로 종결이 나고 말았다. 역사가 말해주고 있잖은가?

만 권의 책을 쓰고 경전과 성서를 모조리 설교한들 서민들의 허기진 배는 부르지 않다.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박애(博愛), 그리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의 행동철학만이 진정한 태평성대를 구가하게 하는 씨앗들이다. 당 현종은 제왕의 육신이 마르지 않고는 백성들이 살이 찔 수가 없다(我瘠肥天 아척비천)라고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기득권자들이 검소질박을 실천하지 않는 한 국민들의 삶은 고달프다는 얘기다. 치우동락(痴又同樂)이란 어원(語源) 역시 계층 간의 벽을 허문 동고동락이란 뜻이다.

영남유학의 태두(太豆)로 경북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모셔진 ‘퇴계 이황 선생’과 산청 덕천서원(德川書院)에 모셔진 ‘남명 조식 선생’ 역시 고관대작의 옥관자 보다는 백성들과 함께 하는 삶이길 원했다. 치우동락을 몸소 실천한 성현들이기에 분별 있는 사람들은 그분들의 서원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2012년 7월 22일. 안동시 도산면 용두산(龍頭山)에 자리한 용수사(龍壽寺 주지 상운)에서는 불교의 선승(禪僧)들과 경상도 내 유림(儒林)들이 모여 요사채 겸 선실(禪室)인 동정각(動靜閣)상량식을 함께 치렀다. 임진(壬辰)년은 용의 해다. 용의 해에 용을 상징하는 사찰의 상량식에 승천하는 용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상서로운 장대비가 쏟아지다가 야단법석이 끝나자마자 하늘은 태연자약하게 비구름을 다시 거두었다.

알다시피 불교와 유교는 함께 할 수 없는 집단이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요 불감훼상이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하여 육신의 터럭 하나라도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훼손 그자체가 불효라는 유학자들과, 축발(蓄髮)과 염의(染衣)로 중생보다 더 헐벗고 적게 지니며 견성(見成)을 얘기할 뿐 세속의 부귀영화를 논하는 격외(格外)의 도리(道理)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승려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할 것인데, 무려 40m에 이르는 사찰의 상량문을 승려가 아닌 유생(儒生)이 자청해 썼다는 것이 더 이채롭기만 했다. 화합과 상생의 극치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지 싶다.
동정각의 현판에 새겨진 의미는 움직임과 고요함이 함께 어우러진 장소라는 말이지만 크게 보면 세속과 세속을 등진 사찰이 둘이 아니며 부처와 범부가 둘이 아니고 모든 성인과 성현의 뜻 역시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용수사는 고려 19대 왕인 명종 11년(1181년) 최선이란 귀족이 창건주로 알려져 있으나 이미 그 이전에 소실된 옛터에 가람을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수차례 화재로 터만 남은 것을 1994년부터 대한불교조계종 전 종정이신 월하 대종사와 역시 전 종정이신 서암 대종사의 법손(法孫)인 회주 ‘원행 선사(현재 강원도 월정사 선원에 안거 중)’께서 원력을 세우고 18년 동안 중창을 거듭해 전설과 신화 속에 존재했던 고찰을 현실세계에 복원시킨 곳이기도 하다.

퇴계 이황 선생과 농암 이현보 선생 역시 용수사에서 공부했고 도산서원의 전신인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세운 도편수가 당시 용수사의 승려인 법련과 정일 스님이었다고 하니 부처님의 제자와 공자 선성의 제자들이 시공(時空)을 거슬러 와 다시 합류해 용수사의 불사(佛事)를 함께 이룬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모든 종교의 성직자와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처럼 배교(排敎)와 배타(排他)보다는 치우동락과 아척비천의 행동철학을 지니고 국민들 속으로 섞여든다면 대한민국은 타골이 예언한 동방의 등불이 돼 국태민안은 절로 이뤄질 것으로 생각되기에 금년 말에 뽑힐 새로운 국가원수 역시 지혜롭고 덕이 있는 분이 당선되길 학수고대해 본다.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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