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표류하는 가치관

  • 입력 2006.08.17 00:00
  • 기자명 강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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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흐르고 변하는 모든 것 속에 있다. 때로, 낮닭이 울고 느릿느릿 새김질하는 황소의 누런 권태로운 삶을 사는 이가 없지도 않지만, 도시에서 시간을 앞다투어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가 이상(李箱)의 ‘권태’에서 보는 그런 느긋함을 가지기가 쉽지는 않다. 향수어린 저- 시골의 권태와 느긋함의 일상은 점점 멀어져가고, 이는 단지 또 다른 바쁘고 조급한 생활 속에서, 하나의 잘 가공된 상품으로서 우리들 주변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편리함을 위하여 도구를 만들면 오히려 그만큼 더 복잡해지고 세상살이는 더 바빠진다. 컴퓨터가 생기면서 일은 더 많아지고 애써 그 사용법을 배워야 할 시간이나 노력도 만만치가 않게 되었다. 휴대전화는 어떤가. 휴대전화는 잠시도 우리들을 편안하게 두지 않는다. 휴대전화가 옆에 없으면 불안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자동차 열쇠, 사무실 열쇠, 지갑, 휴대전화, 가방까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주머니 가득 챙겨야 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고 믿어오던 시절이 그래도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이 문명의 도구들은 생활의 편의성을 넘어서서 대량으로 쏟아져나와 우리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업그레이드 되는 새 기술들은 되레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열심히 뒤쫓아가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어지러운 지구’를 뛰어내리고 싶다고 한 20세기 초반의 근대 문명에 놀란 이상이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면 우리의 일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말할까.

기술문명은 더 다양하게 발전하고 전문화해 왔다. 말할 것도 없이 삶의 행복을 위하여서이다. 그러나 일,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사람에게, 그것은 전문화되고 기계화되고 반복되는 것으로서 돈버는 것 외의 일의 즐거움을 앗아 버리고, 사람이 도리어 기계처럼 일하는 비인간화된 세상이 된다. 일이 중심이 되는 삶의 일상(日常)이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사람들은 반복되고 전문화된 세계의 현상들로부터 거리를 두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소위 ‘일로부터의 소외’가 우리의 의식에 자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문명의 발전이 보여주는 모순, 상업화로 인하여 점점 비인간화되는 세계,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작가 이상의 어지럼증이며 현대문명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이다.

특히나 물리학, 전자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변화된 세계는 가치의 다원성으로써 우리들을 혼란케 한다. 인터넷 기술은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동시에, 한 자리에 펼쳐 놓는다. 계기적이고 순차적인 시간이 아니라 그것의 경계가 없어진 디지털적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다른 가치, 복잡하고 혼란한 가치의 현존화, 동시화로 삶의 가치 준거를 혼돈케 한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서양의 중세는 모든 사물의 중심 가치가 종교의 교리였다면, 근대는 과학, 즉 합리성 또는 이성적인 것이 우리가 믿어 행할 가치의 준거가 되었다. 이제 그것이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단지 그 시대를 지배하는, 헤게모니를 쥔 권력 집단의 지배적 이데올로기(힘, 담론)이었음을 밝히고 있다(푸코). 중세는 가톨릭 교리를 벗어나면 이단(異端)으로서 그것은 거짓, 허위이며 죄가 되었고, 근대에는 합리적 사고나 논리성을 벗어나면 샤머니즘으로 치부되어 배척의 대상이었다. 이제 후기 전자산업사회의 가치의 중심은 곧 이러한 힘, 권력, 가치에 대한 회의가 화두이며, 이는 곧 절대적 가치의 부정, 달리 말하여 사물의 다양한 가치, 사물의 다원성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 대상으로서 부각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들 중 어떤 사람도 한 사람이 단지 노랑머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우리들 감성을 이성보다 덜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는 여성을 더 이상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로 보지 않음과 같다.

절대적 가치의 상실은 모호함과 상대적 가치와 주변만 있는 혼란과 주체적 자아의 상실과 가치의 무정부적 혼돈을 초래한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다양한 삶의 가치 지향이 근원적으로 진정한 가치의 추구에 있으며 이는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이자 욕망 모색인 점으로 보아 결코 가치를 포기하거나 무정부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진실은 혼란으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모색하고 추구해야 하는 인간의 이성적 활동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명형대/경남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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