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봉 칼럼] 진주시를 진주처럼 빛나게 하라

  • 입력 2012.10.15 00:00
  • 기자명 경남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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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려와 용틀임하며 잠시 쉬는 곳이 삼신산(三神山)으로 일컫는 지리산이다. 모산인 지리산은 우측에 차향(茶香) 내음 그윽한 하동을 낳고 좌측에 충절과 정절의 상징인 진주를 낳았다. 경호강을 걸러내 남강으로 흘려보낸 강안(江岸)의 물빛은 세모시나 무명베를 강물에 적시기만 해도 쪽빛으로 염색될 것처럼 푸르디 푸르다.

진주는 천연염료와 비단의 도시로만 유명한 게 아니라 정사(正史)에 기록된 대한민국의 명소가운데 이보다 더 자랑거리를 지닌 도시는 드물다. 이처럼 진주(眞珠)처럼 곱고 아름다운 고을은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임진·정유재난 때 왜군에 의해 진주성이 함락되고 성내의 살아 있는 것은 인간이건 축생이건 모두 몰살당했고 소수의 기생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몇 만평의 좁은 공간에서 자행된 약탈과 살상극은 그 참혹함이 세계사에 기록될 정도였다. 그러니만큼 진주에서 함부로 애국충절을 논해선 안된다. 성 내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에서부터 노거수와 진주성 주변의 바윗돌과 강물까지도 호국충절(護國忠節)의 분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차별화하는 반상(班常)의 시대에 기생은 가장 천민에 속했으나 진주기생 논개는 남성들의 노리개가 아닌 충절의 대명사인 의기(義妓)로 민족이 추모하는 여인으로 남았다.

논개부인 뿐인가? 전란 때 군왕과 나라를 버리고 줄행랑을 친 조정대신들과 사대부들과는 달리 진주 여인들은 행주치마에 돌멩이와 뜨거운 물을 나르며 왜구에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했으니 논개부인을 포함한 당시의 아낙네들은 모두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이며 원종공신(原從功臣)인 셈이다. 그런데도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은 무명용사의 반열에도 오르지 못했다. 개천예술제 기간에 치러지는 논개부인의 제례인 의암별제(義巖別祭)는 가능하다면 당시 전사한 모든 진주여성들까지 함께 추모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또한 진주 인근 백 여리에서 왜적과 싸우다 목숨 바친 의병(義兵)들은 남강변의 자갈보다 많았다. 그런 고장이기에 서부경남 수부도시의 기개와 자존심은 남다르다. 그들은 일등 도시와 일등 시민으로 대접받아야 마땅한데도 어느 때부터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정치적이고 지역적 안배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목포까지 고속철도가 개통된 지 오래인데도 진즉 개통되었어야 할 진주에서 대전간의 내륙철도는 근자에서야 겨우 청사진을 만들 예비비 정도만 할애 받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지방분권이라는 국책사업으로 선정돼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전하기로 약속돼 있던 LH공사의 이전도 이명박 정권 내내 미뤄져 애간장을 태우더니 이달 말께 착공하기로 결정이 난 것 같다.

미국의 융성이 경제와 정치를 뉴욕과 워싱턴으로 분리해 정착시킨 데 있듯이 경남의 융성은 광역시나 다름없이 비대해진 통합창원시에 상주한 경남도청을 원래 있던 진주로 돌려놓는 것이며 이 나라 문화의 축이자 충절과 정절의 진원지인 고을을 더 이상 홀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 미래를 내다보는 식자들의 한결같은 고언이다. LH공사는 온전하게 진주시로 유치돼야하며 정치적인 이해득실로 이전이 또 다시 미뤄져선 결코 안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과 내면이 아우러질 때라야 빛이 난다. 물질의 풍요는 잔반으로 버려지는 음식이 지천일 정도인데도 연일 입에 담기조차 싫은 범죄행위들이 횡횡하는 건 물질과 정신이 궤를 같이 하지 못하고 따로 놀기 때문이다. 진주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정신적인 상징도시로 성장시켜야 했으며 마땅히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을 지녔음에도 항상 정치권의 사정권에서 멀어져 퇴락한 고성(孤城)처럼 추락했다.

국정을 책임지고자 밤잠을 뒤로 한 채 전국을 누비는 대선후보라면 공평무사하고 솔선수범하는 즐풍목우(櫛風沐雨)의 자세를 보여야지 표심에만 집착해 지역색을 조장하고 민심을 이반시키는 무차별한 선심공약은 큰 우를 범하는 짓이다. 즐풍목우란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로 세안(洗眼 목욕)을 한다는 뜻과 일치한다. 진주시를 진주(眞珠)처럼 빛나게 하라! 그런 정책이야말로 대한민국을 가장 빛나게 할 곱디고운 유등(流燈)일 테니까.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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