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푹 눌러쓴 기사, 기다림에 지쳐버린 승객들, 정류소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거리에서 신호대기가 끝나기 무섭게 1차선으로 총알같이 달려가는 시내버스, 택시비를 아껴 보려고 혹시나 막차를 기다려 보지만 퇴근시간이 아까운 막차는 벌써 가버리고 없다. 아마도 자가운전자들은 ‘설마 대중교통이 그럴 리가’ 할 지도 모른다. 심지어 대중교통 문제의 담당 공무원들조차 현 실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라면 감독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첫차와 막차시간의 준수는 차치하고라도 중간에 한두 대 결행되어도 승객이 신고하지 않으면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다. 지난해 6월이 기억난다. 진주 삼성교통 노조파업이 한
목욕탕에서의 일입니다.황토팩을 한 여인이 곁에 있는 머드팩을 한 여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등 밀어드릴게요.”“아뇨… 괜찮아요, 저기… 제가 밀어 드릴까요?”“아뇨, 저는 밀었구요… 손 닿지 않는 데라도 좀 밀어 드릴게요.”황토와 갯벌이 마주보며 씨익 웃자 가지런한 이빨이 더 희게 보입니다.마치 인종이 다른 황인종과 흑인종이 보디랭귀지로 마음을 나누는 듯 합니다. 그까짓 등 밀어준다는 말에 웬 호들갑이냐구요?아니, 요즘 세상에 그게 어디 흔한 풍경인가요. 때밀이기계가 욕탕을 점령한 후부터 등 밀어준다는 말이 쉽게 들리던가요. 더군다나 때밀이아주머니가 상주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등 밀어주는데 아마 오천원 정도는 할 걸요.이쪽에서 황토얼굴과 갯벌얼굴이 서로 미소를 나누고 있는 동안 반대편 때밀이기계는 여전히 돌
보름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 즐거웠다. 독일 월드컵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밤을 잊어가며 열광하고 환호하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의 꿈을 다시 한번 이루자는 열망은 온 국민을 한 마음으로 묶었고 선수들은 기대에 보답하듯 정말 열심히 싸웠다. 그러나 어느 방송의 자막에 ‘축구는 오늘 죽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만큼 심판의 편파적인 판정 탓에 아쉽게 16강의 꿈은 좌절됐다. 분통 터지는 일이다. 국민들은 두 사람만 모이면 심판을 성토했다. 있을 수 없는 판정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낸 심판들을 직접 심판하지 못하는 울분을 소주잔으로 삭여야 했다.우리 선수들 정말 열심히 뛰었고 후회없이 싸웠다. 비록 16강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태극전사
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거리응원전을 틈타 성추행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단다. 새로울 것 없는 진부한 소재가 될 법도 한데, 여전히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범죄의 영역으로 인식되기보다 가십거리 쯤으로 회자된다.법이 엄연한 범죄로 사문화해 놓긴 했으나 성추행이나 희롱의 범주가 상당수 남성들에게는 남성 주류질서에 대한 소수여성들의 반란쯤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성추행 또는 성희롱을 뜻하는 ‘섹슈얼 허래스먼트’(sexual harassment)란 개념이 등장한 것은 1974년 미국 코넬대학에서라고 한다. 한 남성 연구자가 도서관 여직원을 상당 기간 성적으로 괴롭혔는데 몸을 만지고 쳐다보며 자위 흉내를 내기도 했단다. 이 여성은 견디다 못해 직장을 그만둔 뒤 실직에 따른 지원을 신청했는데,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어떤 편향됨이나 부족함도 없이 하나의 공처럼 다 원만하고 빈틈이 없는 독립체로 완전해지려고 한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조금은 돈도 있어야 하겠고,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되어야 하겠고, 남에게 피해보지 않을 정도의 권력도 있으면 한다. 이쯤 되면 건강도 필수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궁합이 맞는 부부 생활도, 잘 나가는 자식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두고 싶다. 언제 어떻게 둥근 공처럼 어느 한쪽도 일그러지거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이룰 수 있을까. 채우면 채울수록 이것저것 주워섬겨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욕망은 끝없이 이어지고, 공은 원만함이 아니라 팽창시켜 키우고 싶은 풍선이 된다. ‘뻥’ 터지기 직전까지 채우고 싶은 풍선이 된다. 늘 부족하다고 여기는 대상은 끝없이 욕망을 낳게 하고 나를
지난 2002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공동 개최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우리나라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 4강에 올랐다는 것보다 오히려 수백만 인파가 전국 곳곳의 거리에 나와 응원전을 펼친 장관 때문이었다고 한다. 한반도를 응원의 함성으로 채웠다고 할 정도로 그때의 열풍은 가히 폭발적이었던 것이다. ‘붉은 악마’라는 축구 응원팀이 자발적으로 구성되고부터 점점 응원에 동참하는 인구가 늘더니 삽시간에 전국을 강타한 응원 열기는 세계 초유의 군중참여를 유발,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말았다. 그때의 열풍이 이번 독일 월드컵에 때맞추어 또 다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전력보강훈련으로 하는 초청경기에서부터 응원 분위기는 서서히 고조되었다. 붉은 T셔츠를 입은 팬들의 붉은 물결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오늘도 정신없이 뛰고 있다. 하룻밤 사이에 수십 채의 청기와 집을 지었다 뜯었다 하면서 말이다. 물론 가난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현대 사회의 특성상 한 발짝을 움직여도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심히 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문제는 돈 조금 손에 쥐었다고 너무 으스대는데 있다. 일부이기는 하나 자가용도 커야 하고 아파트 평수도 커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크면 큰 만큼 대접 받는다는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저급한 체면 문화와 과시욕 업적주의 영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쥐뿔도 없는 놈이 수천만원짜리 승용차를 굴리며 허세를 부리는 꼴사나운 행태를 가끔씩 보게 된다.외국인이 오죽했으면 한국인이 망하고 안 망하고는 그 집에 차
한국과 토고와 월드컵 본선 첫경기는 극적인 후반 역전승으로 끝났다. 밝고 기쁜 일보다 걱정스럽고 우울한 일이 더 많은 요즘, 대토고 역전드라마는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청량제였고 맺힌 것을 풀고 대립하는 것을 모아주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의 한판 굿을 만들어냈다. 감격스러운 일이다. 흔히, 월드컵을 세계인의 축제라고들 하는데 별 생각없이 쓰고 있는 축제라는 말은 서구 그리스 로마의 인본주의적 헬레니즘과 이스라엘의 신본주의 헤브라이즘에 뿌리를 둔, 놀이 의미인 축(祝)과 제사 의미인 제(祭)가 결합된 것으로 우리민족 고유(固有)축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민속학자들은 우리민족 놀이문화의 특징중 하나가 노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어우러진 ‘마당’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든다. 노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분리된 ‘무대’와는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 말고는 동식물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문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퍼뜨리고 있어 문제가 된다. 틀리게 알고 있는 것 중 대표적인 게 억새와 갈대다. 6·25전부터 크게 유행했던 노래에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라는 것이 있다. 이미 흘러간 노래지만 그 가사에 나오는 ‘으악새’로 인해 혼동을 빚는데 ‘으악새’는 새가 아니고 ‘억새’이며 가수가 장음(長音)으로 멋지게 뽑으면서 졸지에 ‘으악 으악’하고 우는 으악새로 돌변, 와전되고 만 것이다.이제 웬만큼 새가 아니고 풀이름으로 자릴 잡았는가 싶었더니 억새와 갈대도 헷갈리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창녕 화왕산정에서 매년 가을에 거행되고 있는 ‘갈대제’라는 것도 실제 억새를 갈대로 우기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모양이야 조금
월드컵 축구의 열기가 생활 속으로 파고들면서 애꿎은 국민을 길거리로 내밀고 있다.이 같은 현상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당’에 대한 그리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저마다의 잠재의식 속에 ‘마당’이라는 민족 고유의 놀이터가 축구 응원이라는 매개를 통해 도출된 민족정신의 발로일 수 있다.하지만 이 같은 형태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축구라는 리모컨을 조작하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전자제품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 일종의 중독증세를 보이고 있다.여기다가 상업주의가 가세하고 국가기관에서도 원형경기장과 길거리를 응원 장소로 제공하면서 대표팀의 연습경기에도 국민을 미치게 했다.유럽에서 대표팀의 탐색전이 펼쳐지는 날 마산의 한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아침부터 ‘붉은악마’의 붉은 티를 입고 있었다. 모든 정신이 축구에 가 있
최근 필자는 연세 지긋하신 존경하는 분으로부터 “자네 왜 가방을 들고 다녀?”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내 나이쯤에 가방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어색해 보여서일 것이다. 물론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자문해 보았다. ‘글쎄 왜 내가 가방을 들고 다닐까! 습관이 돼서?’우리는 학교만 졸업하면 가방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버스 안이나 약속시간, 여가시간에 간단한 읽을거리를 찾지 못하고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도 참으로 뜨겁다. 공부가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공부할 기회를 놓친 부모들의 심정이 자식에게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녀들의 가방이 요즘에는 너무 가벼워 걱정이다.오늘날의 사회를 산업
황당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어처구니 없다고 하기도 그렇고… 왜 웃어야 하는지, 언제 웃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딸이라고 주장하는(?) 개그맨이 나와서 이상한 몸짓을 보이며 무어라고 지껄여대는데 도저히 뭘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어서 엄마라고 우겨대는(?) 남자 개그맨이 나오고, 잠시 후 아버지라 보이고 싶어하는 개그맨이 나왔습니다. ‘언행일치’! 모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 중 한 코너 입니다. 처음엔 도저히 무엇인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 화가 나기도 하고 짜증도 났습니다. 그러다가 슬며시 오기 같은 것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오냐! 다음 주에도 기필코 보고야 말리라! 한 번, 두 번, 아∼ 탄성이 절로 나오며 형광등이 깜박거리다 켜지듯이, 돌 머리가 트이
2002년 그 해 6월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특이하게 기록될 날이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시가지에 뛰쳐나온 민중의 빛바랜 사진을 교과서에서 본 이래로 기쁨과 감격으로 전국의 시가지에서 흥분의 감동으로 뒤덮인 군중을 본 일은 그해 6월이 처음이었다.4년 전에는 히딩크가 한국에 온지 1년 5개월 만에 신화는 가능한 것인지를 의심해 보았다. 1승만 한다고 해도 만족한다는 축구협회의 희망을 그대로 그레이드업 시킨 지도자 히딩크는 온 국민에게 가능성의 존재로 지금도 남겨져 있다.다시 한번 훌륭한 지도자 히딩크가 보고 싶다. 그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남겼다.첫째, 확실한 신뢰였다. 상품으로 친다면 신뢰란 가장 귀중하고 값진 재산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세계적인 글로벌 브랜드의 특성은 다름 아닌 정확하게 품질
산촌에서는 비 오는 날이 좋다. 너울져 날아오르는 산새는 깃을 접고, 빗방울들이 무리지어 골짜기를 휘돌아 난다. 무거운 물이 작은 입자가 되어 바람을 닮는다. 바람의 등을 타고 산 어귀에서부터 산봉우리까지 가벼이 날아오른다. 누가 비를 무겁다고만 하고, 땅으로 떨어진다고만 할 건가. 바위 골짜기를 적시고, 나뭇잎을 적시고, 낡은 초가를 적시고, 비는 작은 골을 한바퀴 휘- 돌고는 메마른 하늘에다 어머니 다림질하실 때처럼 푸우-, 물을 뿜어 올린다. 지구의 중심을 향해 끝없이 내리기만 하는 무거운 것이 작은 물의 입자로 흩어져 가벼운 것으로 되새의 군무처럼 날아오르는 것을.물은 그 반짝이는 되비침의 속성으로 거울이 되고 창은 나를 이끌어 그 앞에 세운다. 다른 공간에 있는, 다른 나를 찾아 마음은 어느덧 비
주지하다시피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정중히 청하는 행위를 청첩(?牒)이라 하는데, 청첩장 받고 가봐야 정중한 대접은 커녕 손해만 보고 오는 일이 다반사니 결혼 풍속도가 예삿일이 아니다.빈손으로 갈 수 없으니 작금의 청첩장은 관청에서 세금이나 벌금 부과할 때 사용하는 고지서가 된 지 오래다. 민폐가 분명한데도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어 더 문제다. 쌍춘철이란 게 들어 있어선지 올핸 유난히도 청첩장이 많이도 날아든다. 견디다 못해 웬만하면 가근방에서 하는 것 아니면 못본 체 하기로 작심해 보지만 그것도 두부 자르듯 명쾌하게 정리가 안된다.조기 퇴직해 소위 백수로 살아가는 모씨는 “백수도 웬만하면 살아가겠는데 이놈의 청첩장 땜에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그래도 좀 폼나게 시골로 돌아가 전원
‘*_^ BRB’늦은 외출에서 돌아온 필자의 손전화기로 전송된 내용의 문자다. 그림문자나 특수기호를 압축해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한다는 이모티콘이란 것을 볼 때마다 변화하는 문화의 패러다임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성의 무기력을 보게 된다. ‘*_^’에 대한 정보는 머릿속에 있으나 ‘BRB’는 생소하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소통이 될 수 있는 언어로 소통하자는 말에 필자의 아이는, “이모션(Emotion)을 아이콘(Icon)화한 건데요 뭘. 이모티콘은요 감정이 들어 있어서 마음으로 읽으면 보여요”하며 제법 그럴 듯한 응수를 한다.인류의 역사를 언어와 문자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로 이야기한다면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고 값진 가치 중 하나가
눈에 불이 번쩍하며 정신이 아뜩해졌습니다. 연이어 큼지막한 손이 오른쪽 뺨도 후려쳤습니다. 영문을 몰라 얼떨떨하게 서있는데 선생님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럽고 놀라서 눈물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퉁퉁 부은 뺨을 비빌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31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입니다. 학교 운동장 앞 조회대 아래 그늘 밑에서 친구와 노닥거리고 있는데, 1학년인 듯한 아이가 조회대 위에서 뛰어내리다가 엎어져서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친구는 교실로 들어가 버리고 필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어정쩡하게 있는데 저만치서 선생님이 달려왔습니다. 엎어진 아이를 안아 일으키더니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올려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5·31 지방선거가 임박해오고 있다.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 자치단체장과 의회의원을 뽑는 이번 선거는 각 당의 수뇌부들이 당력을 총동원하여 선거전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대선이나 총선이 아닌 지방 자치단체장 선거지만 마치 당의 사활을 걸 듯이 자당이 유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력투구하여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급기야 야당의 대표가 피습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보도도 나왔다. 우리나라 정치가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민주주의에 있어서 선거는 대선일 경우 누가 정권을 잡느냐를 결정하는 일이고 그 외 선거는 국민을 위해 공무를 수행할 대행자를 뽑는 일이다. 이러한 뜻으로 행해지는 선거는 결국 크든 작든 권세를 부여하는 행위가 되어
1. 오월 광주, 그 눈부심5월 그날이 다시 돌아왔다. 라 로슈포그는 “인간은 태양과 죽음 중에 그 어떤 것도 직시할 수 없다”고 했다. 광주는 여전히 우리시대의 태양이고 죽음이다. 그래서 나는 광주를 직시할 수 없다. 1980년 5월, 군대에서 갓 제대한 나는 3년만에 보는 세상을 신기해 하며 별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12·12사태라는 엄청난 일을 군에서 생생하게 겪었기 때문에 광주에서 큰 데모가 일어나 비상계엄이 확대되었다는 뉴스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공포와 침묵의 시대였다. 이듬해 복학을 했다. 캠퍼스엔 사복을 한 군인들이 구석구석에 깔려 있었지만 같이 공부하게 된 후배 동급생을 통해 80년 봄의 학원민주화투쟁과 그 이후의 길고 긴 휴교, 데모 주동자들의 제적, 가을학
무심코 대중탕에 들어선 나는 어린이들이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였다. 분명 월요일인데…,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5월 15일 스승의 날임을 알게 되었다.스승의 날에 쉬는 학교가 70%를 넘는다고 하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스승! 스승의 날! 미워할 대상도 아니고 기피할 날은 분명 아닌데 왜 이 날에 교문을 닫아야 하고 선생님과 학생이 없는 빈 자리에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는 축하 현수막만 걸려야 하는가?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충청남도의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전·현직 선생님들을 위로하는 날로 시작된 스승 섬기는 날이 ‘은사의 날’로 되었다가 1982년 정부에서 ‘스승의 날’로 제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이 날이 처음에는 순수한 사은(師恩)을 기리던 날이었는데 오늘은 어린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