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明)나라 진인석(陳仁錫)의 잠확류서(潛確類書)의 이야기이다. 당(唐)나라의 위대한 시인 이백(李白)은 어렸을 때 공부를 싫어하고 놀기만을 좋아했다. 어느 날 어린 이백은 들에서 백발이 성성한 한 노파가 손에 큰 쇠막대를 들고 돌에다 열심히 갈고 있는 것을 봤다. 이상하게 여긴 이백은 그 노파에게 “할머니 지금 무얼 하고 계시죠?”라고 물었다. 그 노파는 이백을 쳐다보더니 “이걸 갈아서 가는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백은 깜짝 놀랐다. “이렇게 굵은 쇠막대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어요?” 그 노파는 이백에게 진지하게 말했
입에서 나온 말에 마음이 응하지 못하고 , 본의 아니게 말과 행동이 다름을 뜻한다. 구불응심 그 유래를 살펴보면 삼국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주(徐州)를 근거지로 차지하고 있던 유비(劉備)는 조조(曹璪)에 의해 남양의 원술(袁術)을 토벌하려 출정하게 됐다. 그래서 자신의 유일한 근거지인 서주(徐州)를 잘 지키기 위해 장비(張飛)에게 부탁을 하는데 장비(張飛)에게 “서주(徐州)는 우리의 유일한 근거지일세, 만일 이곳을 빼앗긴다면 우리는 갈 곳이 없어진다네, 그러니 절대 술 먹고 부하들을 때리지 말게,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승수연담록은 송(宋)나라 왕벽지(王闢之)가 남송(南宋) 고종(高宗) 이전의 잡다한 일화들을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6권에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던 송나라 태종(太宗)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태종은 이방(李昉) 등 14명의 학자들에게 사서(辭書)를 편찬하도록 명했다. 이들은 이전에 발간된 많은 책들을 널리 인용하는 등, 7년 동안의 작업을 통해 사서를 완성했다. 55개 부문으로 1000권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은 처음 서명을 태평편류(太平編類)라 했으나 후에는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개칭했다. 태종은 이 사서가 완성되자 몹시 기뻐
국어(國語) 주어(周語)의 이야기이다. 기원전 524년, 주(周)나라 경왕(景王)은 시장에서 유통되던 소액의 돈을 없애고 고액의 돈을 주조했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은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그들의 원성(怨聲)은 매우 높았다. 그리고 2년 후, 경왕은 민간에 남은 동전(銅錢)들을 수집하여 엄청나게 큰 종(鐘)을 만들었다. 경왕은 악관(樂官)을 불러 그 소리가 어떤지 물었다. 악관의 대답은 이러했다. “백성들에게 부담과 재물상의 손해를 주며 종을 만들었으니, 그 소리가 다른 악기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백성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은
논어 자로(子路)편의 이야기이다.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했다. 위(衛)·조(曹)·송(宋)·정(鄭)·채(蔡) 등의 나라를 돌다가 당시 초(楚)나라에 속해 있던 섭읍(葉邑)에 이르렀다. 이 당시 초(楚)나라에는 심제량(沈諸梁)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는데, 그의 봉지(封地)가 섭읍이었으므로, 스스로를 섭공(葉公)이라 칭했다. 섭공은 공자를 보고, 그에게 정(政)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는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政)이란, 가까운 데서는
자치통감(資治通鑒) 당기(唐紀) 태종(太宗) 정관(貞觀) 2년 조의 이야기이다. 당나라 태종 때 위징(魏徵)이라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역사에 정통했기 때문에 항상 당태종에게 여러 가지 계책을 건의했다. 그는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벼슬이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서기 628년,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당태종이 그에게 물었다.“나라의 군주로서 어떻게 해야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또한 일을 잘못 처리하는 경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다 들
며칠전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된 무고한 시민 2명, 억울한 21일간의 옥살이 뉴스를 접한 많은 네티즌과 시민들은 분노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일이 자신들의 가족 일처럼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함께하면서도 이러한 일을 자행한 수사기관 담당자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격한 처벌로써 법정신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댓글로 표현 됐다. 심지어 이 사건의 경찰관만 처벌하지 말고 담당 검사, 영장 실질 심사 판사까지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또한 이 사건의 본질을 알게 된
남제서(南齊書) 장융전(張融傳)의 이야기이다. 남북조 시대, 남제(南齊)에 글재주가 좋은 장융이라는 고관(高官)이 있었다. 그는 비록 요직에 있었지만 평소 생활은 검소했으며, 항상 오래되고 낡은 의복을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나라 태조는 사람을 시켜 자신이 입던 옷을 장융에게 보냈다. 당시 황제가 자신이 입던 옷을 하사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할 상이었다. 제나라 태조는 옷을 보내면서 친서(親書)도 함께 보냈는데, 태조는 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인은 경의 옷차림을 보고 경의 생활이 매우 검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소. 그
최근 중부지방의 극심한 가뭄으로 춘천 소양강댐의 수위가 역대 최저치로 근접한 가운데 일찍 불볕더위까지 겹치면서 불쾌지수 또한 80가까이 치솟았다. 대구 26도를 비롯해 서울 대전 광주 23도 등 ‘오뉴월 더위에 염소 뿔이 빠진다’는 구전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얼마나 더웠으면 염소 뿔이 물렁 물렁 해 져서 빠질 정도라는 옛말이 있다. “요뉴월 볕은 솔개만 지나도 낫다”는 말도 있다. 오뉴월 땡볕에 솔개가 지나면서 만드는 조그만 그늘도 매우 소중하다는 뜻이다. 이들 속담에에 나오는 ‘오뉴월’은 음력 5월과 6월이란 뜻으로, 여름 한철을
진서(晉書) 왕융전(王戎傳)의 이야기이다. 진 나라의 왕융(서기 234-305년)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며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좋아했다. 그는 유유자적하며 인생을 즐기고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왕융이 일곱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문득 길가의 자두나무에 가지가 휘어지게 많은 자두가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따려고 앞 다투어 그 나무로 달려갔으나, 왕융만은 그 자리에 가만있었다. 그때 길을 가던 어떤 사람이 왕융에게 물었다. “얘야, 너는 왜 따러가지 않고 서 있는 거냐?” 왕융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니다. 천지가 꽃 무덤이다. 천지는 봄의 기운으로 우리들의 삶에 즐거움을 주고 있다. 봄은 왔지만 내 마음에는 봄이 아직 오지 않았다. 굉장히 상징적인 표현이다. 계절적으로 봄이 왔지만 날씨가 봄 날씨 아니기도 하고 뜻하는 바를 이루었으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지금 경남도 아침의 출근길에는 어떤 자치단체를 막론하고 온통 피켓 물결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밥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과연 누가? 남편의 출근 준비와 아이들의 등교 준비에도 바쁜 우리의 어머니들을 거리로 내 몰았단 말인가? 무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갈천자 천칙(天則)편의 이야기이다. 옛날 초나라 땅에 가난한 한 서생(書生)이 있었다. 그는 회남자(淮南子)를 읽고 사마귀 벌레가 매미를 잡을 때 나뭇잎에 몸을 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그 나무를 찾아 잎사귀를 모조리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나뭇잎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 체 아내에게 자기의 모습이 보이는지 물어보았다. 처음 그의 아내는 “다 보인다”고 대답했으나, 남편이 계속 이렇게 눈을 가리고 다니자 어찌나 보기 싫었던지 “그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버렸
우리나라는 상하의 서열이 분명하고 그로인해 경어와 반어가 엄격히 구별되는 언어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곳 통영시는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밀접해 있는 소도시라 서로 혈연·학연등으로 얽혀 있어 웃지 못할 사건사고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얼마전 잠시 볼일이 있어 사무실 문을 잠그지 않고 밖에 나갔다. 들어와 보니 익숙치않은 얼굴이 사무실안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낮설진 않아 보였으나 일단 누구시냐고 물어 봤지만, 상대의 반응이 전혀 뜻밖이었다. 자신을 못 알아보는 나를 책망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대뜸 자신을 모르겠느냐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자왈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 여부운) 공자 이르길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어도 그 속에 즐거움이 있으며 의롭지 않은 재물과 직위는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했다.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정신 중의 하나이다. 공자의 제자 중 특히 안회는 안빈낙도를 실천했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 작품의 주요한 소재였던 강호가도와도 관계가 있는 안
옛날 중국 북산에 90세나 되는 우공(愚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우공에게는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집 근처를 둘레가 700리 높이가 만길이나 되는 태항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이 에워싸고 있어서 북쪽으로는 길이 막혀있다는 사실이었다. 항상 먼 길을 돌아와야 했기에 불만이 많았던 그는 어느 날 가족회의를 열었다. “2개의 험한 산을 평평히 하면 더 이상 먼 길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산을 깎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의 세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였지만 아내는 어의가 없었다. 그도
올 한해도 무탈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니 이제 며칠이 남지 않았다. 흔히들 사람들은 12월이 되면 송년회나 망년회 등을 통해 지나온 한해를 마무리 한다. 하지만 늘 아쉬움은 남는다. ‘그 때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했는데’ ‘그 때 그 사람에게 신중하게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상황에선 이렇게 말고 저렇게 행동해야 했는데.’ 올 한 해 동안 슬픈 일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기쁜 일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황망한 일을 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며,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가 살면서 예측하지 못한 일이며, 그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에 누구나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2014년 산청군에도 새로운 자치단체장과 새로운 의회가 구성돼 새로운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는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인 안회(顔回)의 대화가 실려 있다. 안회는 위(衛)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스승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스승께 “위나라 국왕은 제멋대로 독재를 한다고 합니다. 국권을 남용하고, 백성들 가운데는 죽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떠나고,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義士) 집에 환자가 많이 모이기 마련이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저는 이에 따르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는 “위나라 왕이 어진 이를 반기고 어리석은 자를 싫어한다면, 어찌 너를 써서 다른 일을 하겠느냐? 그는 왕의 권세로 너를 누르며 능숙한 말솜씨로 이기려고 덤벼들 것이니, 이는 불을 끄려고 불을 더하고 물을 막으려고 물을
그 무덥던 여름도 삼라만상의 법칙에 따라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해마다 10월 이맘때가 되면 시골 농촌에서는 풍성한 농작물이 지천에 널려있고 이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어우러져 가을을 더욱 짙게 물들이고 있다. 그뿐이랴, 마을마다 지역마다 공동체 단위의 크고 작은 가을 축제 행사로 관광객에게 가슴 벅차고 감동의 물결이 넘실대는 오늘을 선물하고 있다. 이렇게 좋은 계절, 내 마음속에 영원한 추억으로 담아두고 싶다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농부들은 농작물을 거둬들이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신 상태에서 경운기 등 농기계를 운전하다가 큰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관광객은 도시 일상의 탈출, 해방감으로 한적한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화타전(華陀傳)에는 동한(東漢) 말기 뛰어난 의술로 신의(神醫)라는 칭송을 받았던 화타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번은 고을의 벼슬아치인 예심(倪尋)과 이연(李延) 두 사람 모두 고열(高熱)과 심한 두통(頭痛)을 앓게 됐다. 다른 의원들이 와서 그들을 살펴보았으나 효과가 없자, 결국 화타가 초빙돼 왔다. 그는 두 사람의 상태를 살펴 본 후, 각각 다른 처방을 내렸다. 증상이 똑같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약을 먹게 하자,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화타는 “예심은 신체 외부에 병은 없으나 잘못 먹어 내부에 배탈이 났으므로 사약(瀉藥)을 먹어야 하고, 이연은 신체 내부에 병은 없으나 외부의 영향으로 감기에 걸린 것이니 발산약(發散藥)을
창녕군의회는 17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이기호)가 2013회계연도 세입세출결산 승인안과 2013년도 예비비지출에 대한 승인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날 김상욱 창녕부군수와 실·과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인철 재무과장은 “명시이월, 국·도비 보조금, 잉여금, 공기업특별회계, 기금결산, 채권공유재산현황 등으로 이자수입확대 노력, 미납차량번호판영치 등 세수증대와 누락방지를 위해서 담당자 회의를 통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우식 군의원은 “예산결산메뉴얼이 지난해와 똑같다”라는 지적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창녕군의원 11명(재선 4명·초선 7명·서경순 비례대표 포함) 중 김우식·이칠봉 의원만이 질문을 했을 뿐 다른 의원들은 묵묵부답이었다. 지역구를 대표하는 군의원들이 군정